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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마르는 '빚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56면

몸이 아픈 것만 병이 아니다.

허약한 신체 못지 않게 재무상태가 건전하지 않아도 자신은 물론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해칠 수 있다.

종합검진 때 혈압과 간 수치를 재보듯이 스스로의 재무생활을 한번 점검해 보자.

위의 체크리스트 중 두 가지 이상의 항목에 '예'라고 답했다면 당신의 재무생활엔 이미 적신호가 켜졌다고 볼 수 있다.자,그럼 어떻게 손상된 재무건강을 회복할 것인가.

# 이상 발견-흥청망청 습 관 고쳐라

우선 자신의 재무생활에 이상이 있다는 걸 솔직히 인정하고 어쩌다가 현재 상태에 이르게 됐는지 알아보는 게 문제 해결의 첫걸음이라고 이재일 씨티은행 소비자금융 상무는 말한다.

대부분의 경미한 위기들은 무엇이 문제인지를 이해하는 순간 해결책도 저절로 떠오르는 법이다. 좋은 물건에 대한 욕심이 지나쳐 자신의 소득소준을 잠시 잊고 산 것은 아닌지, 입사 턱에 승진 턱까지 주변에 선심쓰는 게 아예 일상화된 것은 아닌지…. 스스로 문제다 싶은 습관만 바로잡아도 당신의 재무건강은 훨씬 양호해진다.

# 신용 불량자?-대환대출 알아보자

그러나 문제가 그 정도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면 좀 심각한 상태다. 빈번한 연체 때문에 어쩌면 당신은 이미 신용불량자로 낙인찍혀 있을지도 모른다.

신용불량자란 금융기관들이 '이 사람은 돈을 빌리고도 갚지 못하고 있으니 새로 꿔주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라는 딱지를 붙이고 집단 따돌림을 시키는 사람을 일컫는다. 신체의 병으로 비유하자면 특별관리가 필요한 중증 환자다. 만약 자신이 신용불량자인지 아닌지조차 헷갈리는 사람은 은행연합회의 상담실이나 가까운 은행지점에 찾아가 물어보면 금방 진단을 내려줄 것이다(참, 신분증은 꼭 지참하고 가야 한다).

신용불량자의 처지가 워낙 한심하다 보니 비싼 사채(요즘은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인터넷 사이트에까지 '카드 대금 대신 갚아드립니다'라는 유혹적인 광고가 판을 친다)를 빌려 신용카드 연체대금을 갚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이들 업체는 연체된 카드대금을 갚아주는 '친절'을 베푸는 대신 일주일에 5∼10%의 수수료를 뗀다. 일주일에 5%라면 대략 한달에 20%, 연간으론 2백40%나 되는 어마어마한 금리다. 그 높다는 카드사 연체금리가 기껏해야 연 24%에 불과하니 한번 비교해보라.

신용불량자를 면해보겠다고 이런 무시무시한 업체들에 기대기 시작했다간 얼마 안가 연체대금보다 이자가 더 불어나 도저히 치유하지 못할 환자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갚을 돈은 없고,신용불량자가 되기도 싫은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당당하게 자신이 거래하는 카드회사나 은행 문을 두드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충고다.

요즘엔 카드회사마다 연체회원들을 대상으로 연 14∼19%의 금리에 이른바 대환(貸換)대출을 해준다. 대환대출이란 연체대금을 일반대출로 바꿔주는 것이다. 금리도 연체금리에 비해 훨씬 싼 데다 연체금이 대출로 바뀌는 순간 연체상태에서 해방되니까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지금 형편이 어려울 뿐 돈을 떼먹을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귀사에서 빌린 돈을 꼭 갚고 싶습니다"라는 의지를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다.

혹 당신이 실직을 당했거나 중병에 걸리는 등 피치못할 사정으로 카드빚을 못갚고 있다면 카드회사들은 연체이자를 면제해주고 원금만 몇년에 걸쳐 나눠 갚을 수 있도록 선처해 주기도 한다. 카드회사들로서도 돈을 아예 떼이는 것보다는 한푼이라도 건지는 게 낫겠다 싶어 시작한 일이니 부담 갖지 말고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게 좋다.

# 신용 불량 중태-개인 워크아웃 활용을

다음으로 이미 신용불량자가 된 뒤 시간이 꽤 흐른 데다, 하도 여러 곳에서 돈을 빌려 한두개 금융기관의 빚을 갚는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딱한 분들을 위한 해결법을 알아보자.

예전엔 파산밖에 방법이 없었지만 이달 초 '개인 신용회복 지원제도'가 새롭게 선보였다. 개인워크아웃 제도라고도 한다. 이 제도에 신청하면 은행·보험·카드·상호저축은행 등 금융권 대표들이 심사해 ▶이자를 깎아주거나 ▶대출금을 나눠갚도록 하거나 ▶대출금 갚을 날짜를 미뤄준다. 재산을 다 처분해도 빚을 갚기 어려운 처지라면 대출금의 3분의 1 범위 내에서 원금을 깎아주기도 하는데 이 경우엔 한꺼번에 나머지 돈을 다 갚아야 한다.

매우 바람직한 제도로 보이지만 모든 사람을 구제해 주긴 힘들다는 게 문제다. 신청 자격이 꽤 까다로운 데다 현재 사무국이 출범한 지 얼마 안되다 보니 자격을 갖춘 사람 중에서도 1단계 해당자에 대해서만 신청을 받고 있다. 1단계 해당자는 5개 이상의 금융기관에서 2천만원 이하를 빌린 사람 가운데 신용불량자로 등록된 지 1년 이상 지난 경우다. 여러개의 신용카드로 카드대금을 돌려막다가 실패한 20∼30대 젊은층이 주된 대상이 될 듯싶다.

한복환 신용회복지원위원회 사무국장은 "1단계에 해당되는 사람만 해도 얼추 10만명은 될 것으로 추산된다"면서 "2단계 이후의 해당자들은 한참 기다려야 순서가 돌아올테니 먼저 개별 금융기관을 찾아가 의논해보라"고 권했다.

# 마음병부터 고쳐라

마지막으로 별것 아닌 듯하지만 중요한 얘기 한 가지. 몸의 병이 그렇듯이 나쁜 재무상태에서 회복되기 위해서도 긍정적인 사고를 해야 한다. 안된다며 지레 포기하지 말고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갖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급해져도 안된다. 신용불량 기록을 지우는 일만도 1∼2년은 걸리기 때문이다.

모든 병은 마음 먹기 나름이다.

글=신예리·사진=주기중 기자 shiny@joongang.co.kr

재무건강 체크 리스트

♧신용카드로 현금서비스를 받아 다른 빚을 갚거나 생활비로 충당한다.

♧매달 신용카드 대금을 전부 갚지 못한다.

♧신용카드 대금을 항상 기일보다 늦게 낸다.

♧월급에서 월세나 주택융자 할부금을 떼고 남는 돈이 매달 내야 하는 카드대금 등 각종 대출 원리금보다 적다.

♧연체된 빚을 독촉하는 전화나 편지를 받고 있다.

♧각종 빚이 얼마인지 정확히 모른다.

♧가정에서 돈 문제로 배우자와 다툰 적이 있다.

♧쓴 돈을 감당하지 못해 시간외 근무를 자청하거나 부업을 하고 있다.

♧빚쟁이들이 월급의 일부를 떼어가거나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자료:씨티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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