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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격! 레슨실 ⑤ 첼로 정명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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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대관령국제음악제 음악학교의 교수진으로 참가한 정 교수는 올 여름 한 달 동안 네 명의 학생을 가르친다.

정명화 교수의 형제들은 바이올린·첼로·피아노·플루트를 연주한다. “다양한 음악을 들었던 경험이 지금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대관령국제음악제 제공]

◆맞춤식 레슨=“이 음악을 전혀 모르던 사람도 마치 오랫동안 들었던 작품처럼 푹 빠져들게 만들어야 해.” 학생이 다시 활을 들었다. “아냐. 다음 악장으로 넘어가자. 네가 무대에서 훨씬 잘 하는 걸 알아.”

김양을 3년째 가르친 정교수는 “무대 위 상황에 대해서는 손볼 게 거의 없는 학생”이라고 제자를 소개했다. “어떤 학생은 레슨실에서 기가 막히게 하다가 무대에만 가면 폭발이 안 돼요. 또 어떤 제자는 무대에서 더 완벽하게 하죠.” 그는 학생이 엘가의 협주곡 네 개 악장을 연주하는 동안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학생의 연주에 맞춰 목소리로 노래하면서 뉘앙스를 살려줄 뿐이었다. 김양은 이튿날 대관령국제음악제의 협연자 콩쿠르에서 엘가를 연주해 1위에 올랐다.

정 교수는 “모든 첼리스트의 연주는 각자의 얼굴처럼 다르다”라 고 말했다. “지나치게 완벽하게 하느라 큰 흐름을 못 보는 학생과 곡을 빨리 익히지만 세부적인 표현이 부족한 학생을 똑같이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설명이다. 때문에 레슨은 철저하게 맞춤식으로 진행된다.

◆노래하고 춤추며=두 번째 학생이 들어와 스페인 작곡가 카사도의 ‘레퀴에브로스(Requiebros)’를 연주했다. 맞은편에 앉아 음악을 듣던 정 교수가 돌연 신발을 벗고 학생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내가 젊을 땐 스페인영화를 참 많이 봤는데, 요즘은 안 그렇지?” 정 교수가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것 같은 몸짓으로 스페인의 열정적 춤을 흉내 냈다. “이 부분은 무용수가 고개를 홱 돌리는 장면 아닐까?”

정 교수는 “악기는 첼로를 하지만 무용과 성악을 늘 동경해왔다”고 말했다. 레슨실 풍경이 바로 그랬다. 시원한 목청으로 노래를 불러주다가, 불현듯 일어나 춤을 추기도 했다. “노래하면서 발성을 조금만 바꿔도 음악이 완전히 달라지고, 무용수가 손가락만 조금 틀어도 느낌이 변하잖아요. 반면 첼리스트는 악기로 감정을 표현해야 하죠. 다른 장르의 예술이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익히면 연주도 한결 쉬워져요.”

오늘의 ‘교육자 정명화’를 만든 사람은 크게 두 명이다. 첫 번째 인물은 어머니. ‘정트리오’를 비롯해 일곱 남매를 길러낸 이원숙(92)씨는 아이들의 특성을 정확하게 파악해 길렀다. 개성에 맞춰 서로 다른 악기를 쥐어줬다. 미국 남가주 대학에서 공부하던 시절의 스승 그레고르 피아티고르스키도 빼놓을 수 없다. “함께 배우던 동기들에게 각자 다른 레슨을 했던 것이 기억에 남아요.” 첼리스트들에게 ‘그레이트(Great) 피아티고르스키’라 불리는 스승에게 맞춤식 교육을 전수받은 셈이다.

독주뿐 아니라 실내악·협연 경험을 많이 쌓은 것도 정 교수의 자산이다. 그는 지난해 국제 무대 데뷔 40주년을 맞았다.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여름 음악축제 협연자로 얼굴을 처음 알렸던 그는 제네바 국제콩쿠르 우승, 세계적 회사인 콜럼비아 아티스트 매니지먼트사 계약 등으로 각광을 받았다. 동생들과 트리오로 세계 무대에서 활약했다.

“1990년부터 미국 매네스 음대에서 가르치기 시작했고, 93년 한국예술종합학교로 왔죠. 오랜 외국 생활 끝에 만난 한국 학생들은 모두 ‘우리 아이들’로 보였어요. 아이들과 함께하는 것, 이렇게 즐거울 줄 몰랐어요.”

대관령=김호정 기자

◆정명화의 원포인트 레슨

- 자신의 목소리가 첼로를 통해 나오도록 해야 한다.

- 좋은 연주자의 녹음을 반복해 들으며 미세한 뉘앙스를 파악하라.

- 콩쿠르는 올림픽이 아니다. 잘 해도 결과가 나쁠 수 있음을 인정하라.

- 인기를 경계하라. 유명해지기 위해 음악을 해서는 안 된다.

- 오디션·콩쿠르 등 어떤 무대에서도 음악 자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훈련하라.



정명화의 제자들

정명화 교수는 여덟 살보다 어린 학생은 가르치지 않는다. “아이 특유의 음악성을 망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윤이상의 작품 해석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첼리스트 고봉인(26)씨 역시 열 살에 정 교수를 처음 만났다. 스승은 제자의 풍부한 상상력과 빠른 이해력을 스승이 알아봤다. 제자는 하버드대 생물학과와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를 함께 다니며 독특한 연주자로 성장했다. 지난해 로스트로포비치 국제콩쿠르에서 특별상을 받은 강승민(23), 미국 캔자스시티 오케스트라를 거쳐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수석으로 활동하는 주연선(29)씨, 스페인 레이나 소피아 오케스트라 부수석 김민지(31)씨 등이 정 교수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지난해 요한슨 국제청소년현악콩쿠르에서 1위에 오른 이상은(17)양도 주목해야 할 제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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