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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영화 첫 도전 맷 데이먼 "주먹으로 떠보고 싶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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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환하게 웃는 입술 사이로 가지런한 이가 드러난다. 말끔한 피부, 또렷한 이목구비, 단정한 머리칼 …. 1백% 모범생 분위기다. 주변을 제압하는 카리스마는 없지만 옆사람을 무장해제시키는 서글서글한 미소가 일품이다. 맷 데이먼(32). 그에게서 할리우드 스타의 화려함은 찾기 힘들었다. 신작 '본 아이덴티티'를 홍보하러 대만의 타이베이(臺北)에 도착한 그는 순박한 청년처럼 보였다. 하버드대 영문과 중퇴란 학벌 탓에 지성파란 소리도 듣는다. 미니 드라이버·위노나 라이더 등과 염문을 뿌린 그의 이력이 쉽게 연상되지 않았다.

18일 개봉하는 '본 아이덴티티'(The Bourne Identity)는 정통 스파이 영화다.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로버트 러드럼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했다. 제목의 본은 주인공 제이슨 본을 가리킨다. 번역하면 '본의 정체'라는 뜻.

영화는 기억상실증을 모티브로 사용했다. 돌발적 사고로 과거를 모두 잊어버린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유럽 파견 요원인 본이 자신의 정체를 찾아나선다는 줄거리다. 스파이 영화답게 고도의 두뇌전과 호쾌한 액션이 펼쳐진다. 체코 프라하와 프랑스 파리 등 그 자체로 아름다운 도시가 배경이다.

'본 아이덴티티'의 최대 매력은 사실적인 액션이다. 특수효과가 넘쳐나는 007 시리즈류와 달리 과장된 영상이 거의 없다. 할리우드의 전매 특허인 볼거리를 절제한 셈이다. 화려한 영상을 선호하는 이들에겐 다소 심심해 보일 수 있다.

대신 영화는 짜임새에 승부를 건다. 잊어버린 자신을 회복하려는 본과 조직의 비밀을 알고 있는 그를 제거하려는 CIA 사이에서 긴박한 추격전이 벌어진다. CIA 일급 요원인 본의 집요한 의지와 뛰어난 수완이 부각된다.

본이 CIA의 추격을 피해 도망가다 만난 여성 마리(프랑카 포텐트)와 사랑에 빠지는 등 적당한 멜로도 가미됐다.

주인공이 연약한 아이를 통해 잊었던 자신을 찾는다는 설정이 다소 신파적이고, 매끄러운 듯하지만 평범해 보이는 영상·구성도 약점으로 꼽힌다. 감독 더그 라이먼. 12세 이상 관람가.

번개 같은 몸짓으로 상대 킬러를 간단하게 물리치고, 고층 건물에서 아슬아슬하게 내려오고, 파리의 골목길을 낡은 소형차로 질주하는 '본 아이덴티티'의 제이슨 본도 닮지 않았다. 평범함 속에서 분출되는 비범함, 그런 게 배우라면 그가 그런 경우가 아닐까 싶다.

처음으로 액션에 도전했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CIA 요원을 연기했다. 총은 물론 칼도 능숙하게 다루고, 일본 가라테와 태국 킥복싱을 조합한 '칼리'라는 무술도 보여준다. 홍보 행사에 익숙해졌는지, 취재진이 가장 궁금해할 만한 대목부터 말문을 열었다.

"액션영화의 주연, 스파이더맨을 좋아했던 어린 시절의 꿈을 이뤘습니다. 한번쯤 수퍼 히어로가 되고 싶었거든요."

그러나 '본 아이덴티티'의 그는 수퍼 히어로가 아니다. '007'의 제임스 본드처럼 변화무쌍하지 않다. 대신 치밀한 추리와 정교한 몸짓이 필수적인 진짜 현실 속의 스파이에 가깝다.

"그래도 몸을 만들기가 만만치 않았어요. 격투 장면을 위해 하루 3시간씩 6주간 연습했습니다. 전문 복서의 도움을 크게 받았지요. '리플리'에서 피아노를 배우고, '레인메이커'에서 바텐더를 한 것과 마찬가지지요."

액션 배우로 부르기엔 아직 무리가 있어 보인다. 스파이를 다룬 스릴러답게 '본 아이덴티티'에선 활극보다 두뇌싸움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이 영화에선 캐릭터의 힘이 돋보입니다. 그래서 액션이 작아 보일 수 있죠. 예컨대 많은 할리우드 액션 영화에선 큰 총을 들고 정문에서부터 총을 난사하거나, 무식할 정도로 폭탄을 터뜨리지만 이 영화엔 그런 장면이 없습니다. 이야기의 사실성에 무게를 실었거든요."

'본 아이덴티티'에선 그가 프랑스 경찰차의 추격을 피해 이리저리 파리의 골목길을 누비는 모습이 실감난다. 그는 스턴트맨에게 공을 돌렸다. 두 개의 핸들을 준비하고 오른쪽에 앉은 스턴트맨이 핸들을 돌리면 왼쪽에 앉은 그가 그대로 흉내냈다고 한다.

데이먼은 자수성가한 배우로 알려져 있다. 연기자가 되겠다고 열여섯살 때부터 혼자 힘으로 돈을 벌었고, 1988년 '미스터 피자'에서 대사 한줄의 단역으로 출발했다. 마침내 97년 벤 애플렉과 함께 쓴 시나리오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탄 '굿 윌 헌팅'에서 주연을 겸하면서 스타덤에 올랐다.

"할리우드는 전쟁터입니다. 94년 당시 시나리오작가조합의 회원은 1만여명이었으나 실제로 활동하는 사람은 5%도 안됐죠. 벤과 저도 한동안 실업자였는데 웨이터 자리도 구하기 힘들 정도였어요. 지금도 한눈을 팔면 산 채로 잡혀 먹힐 만큼 살벌한 곳이죠."

'골든 보이'(황금 소년)로 성공했지만 언제라도 '브론즈 보이'(청동 소년)로 떨어질 수 있는 곳이 할리우드라는 것. 영화처럼 기억을 잃는다고 가정하고, 그래도 가장 잊지 못할 것과 가장 잊고 싶은 것이 있느냐고 물었다.

"글쎄요, 출세작 '굿 윌 헌팅'을 잊을 수 없겠죠. 벤과 제가 유명해지고, 우리만의 삶을 꾸려갈 발판이 됐거든요. 그리고 잊고 싶은 황당한 경험이 있는데, 4년 전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굿 윌 헌팅' 시사회 직후 클린턴 대통령이 화장실을 차지하는 바람에 밖에 서서 안절부절 못한 적이 있습니다."

자신도 쑥스러운 듯 크게 웃었다. 시나리오를 쓴 만큼 앞으론 감독도 하고 싶고, 바쁜 탓에 자주 만나지 못하는 벤과 함께 일하고 싶다는 뜻도 내비쳤다.

중퇴했던 하버드에도 다시 들어가 영문학보다 인간에 대한 이해를 넓히겠다는 희망도 밝혔다. 보기와 달리 욕심이 많다. 그 열정이 그를 만들었겠지만….

타이베이=박정호 기자

jhlogo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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