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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김석철 교수] "서울에 역사·자연을 돌려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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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고도(古都)서울 살리기'란 제목의 연재물을 최근 6회에 걸쳐 중앙일보에 기고했던 건축가 김석철(명지대 건축대학장·아키반 건축도시연구원장)교수. 서울과 도시에 관한 한 김교수의 머리와 가슴은 아이디어 창고다. 그만큼 하고 싶은 말도 많다. 청계천 복원 등 본지에 발표한 구상은 도시계획의 문화적 중요성을 환기시켰다. 김교수는 서울에 대한 자신의 구상을 놓고 이명박 서울시장과 직접 얘기해 보고 싶다고 밝혔다.

서울 종로구 가회동 북촌(北村)에 있는 김석철 교수의 연구소. 전통 한옥을 현대적으로 개조했다. 한옥의 구조를 유지한 채 사방 벽면을 모두 통유리로 만들어 안과 밖이 훤히 소통한다.

대화 도중 불청객은 모기였다. 모기들도 시멘트 보다는 황토를 좋아한단다. "종로구·중구·동대문구 등으로 분할된 서울 4대문 안을 하나의 특별구로 만들어야 합니다." 김씨는 이렇게 말하면서 바로 얘기의 핵심으로 들어갔다.

4대문 안은 상주 인구가 20만명으로 강남구의 절반에도 못미친다. 세계 어느 도시를 보아도 역사의 상징물인 성곽이 있는 도시는 성곽 안을 하나의 행정단위로 묶어놓았다는 설명이다.

대략 그 크기는 비슷해서 사방 4㎞에 10만∼20만명이 살며 그 정도 규모가 가장 쾌적하게 살기좋다고 한다. 게다가 서울 4대문 안은 정중앙을 청계천이 가로지르는 형국이다.

김교수는 "청계천을 복원하고 문화광장을 설치하는 일을 제대로 실행하기 위해서도 구단위 주민들의 동의와 행정력을 집중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언론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뉴욕·파리·베니스와 같은 선진국 도시의 경우 도시계획에 대한 제안이 신문을 통해 지속적으로 보도되고 검증받는 오랜 관행이 있다고 지적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듯 김교수는 산발적일 수 있는 아이디어들을 체계적으로 꿰어 이론화시켰다.

서울을 역사-자연-현대적 가치가 공존하는 도시로 만드는 것이 핵심이며, 4대문 안을 걸어다니면서 산업활동도 하고 역사와 자연을 감상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김교수가 제안한 '서울의 상징가로와 세 도시광장''북촌의 역사 특구화''종묘-남산,창덕궁-남산간 도심 산업지구화''동대문-남산 문화산업지구화''청계천 운하가로 계획'등이 서울 4대문안 구조개혁이란 이름 아래 서로서로 연관되며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중앙일보에 글이 나간 후 지인들의 전화가 잇따랐습니다. 우리 서울을 그렇게 멋지게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어 고맙다는 소리를 들을 때 가장 기뻤습니다." 여태까지는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숨바쁘게 달려오기만 했다는 얘기다. 청계천 복원이 하천 살리기 정도로 인식되고 있는 수준을 보다 근본적이고 포괄적인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청계천 복원에 대한 좀더 구체적인 복안을 물어보았다.

"청계천 복원을 하자면 먼저 그 구간을 4대문 안에 국한해야 합니다. 수표교 자리에서 오간수문 자리까지 폭 50m에 길이 2㎞의 청계천을 복원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50m의 폭을 삼등분하는 일입니다. 물길과 찻길이 두 개의 주요 흐름이고, 세번째는 각종 오배수관·가스관·전선관 등의 통로를 만드는 일입니다. 그래야만 현재 청계천을 통과하는 하루 20만대 가량의 교통량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청계천의 동쪽과 서쪽의 높낮이를 조절함으로써 수량과 청결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김교수의 설명은 이어졌다. 50m의 폭 가운데 절반인 25m만이 물길이 된다. 나머지 25m는 물길의 좌우로 나누어 찻길과 하수통로 등이 된다. 찻길과 하수 통로는 현재의 청계천 둔치에 해당하는 데 이곳은 복개한 상태를 유지하고, 청계천 뚜껑이 열리는 부분은 폭 25m의 물길이다.

문제는 물길에 물을 흐르게 하는 수원(水原)확보 여부다. 이 부분에 상당수 전문가들은 의구심을 제기하지만 김교수의 경우 그리 어렵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청계천 바닥의 높낮이를 먼저 다듬고 시작과 끝 부분에 각각 수문을 만든다. 시작하는 쪽의 수문을 통해 상류의 빗물을 가두고 끝 부분 수문을 통해 수량을 조절하면 운하형 물길이 만들어진다."

그는 특히 공사의 순서상 이같은 작업을 다 끝낸 후 복개시설의 뚜껑을 열고 청계 고가도로를 해체하면 된다는 주장이다. 공사기간 동안 교통난 해소를 위해서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대학과 중국 칭화대학 등에서의 오랜 동안의 연구·강의 경험은 김교수의 가장 큰 자산이다. 기존에 있던 것들을 최대한 활용하자는 원칙 아래 함부로 헐고 새로 짓는 것은 반대한다.

당연히 비용이 많이 들 일도 없다고 한다. "도시설계는 역사와 인간의 자취를 연결함으로써 삶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지 무조건 헐고 새로 짓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도시 서울의 상징인 4대문 안에서부터 시작한 김교수의 도시계획 구상은 강북 전체로 이어지고 다시 한강을 활용해 강남북 부동산 가치의 균형을 잡는 방향으로 가야한다는 제안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서울의 허파인 그린벨트를 해제하지 않고 활용하는 방안을 강구함으로써 서울과 수도권 위성도시의 연계 발전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의 도시는 왕정(王政)의 도시였습니다. 오늘의 도시는 민주의 도시요 시민의 도시입니다. 프랑스혁명 이후 파리엔 샹젤리제를 중심으로 사통팔달하는 방사선 도로가 생겨났습니다. 중세 도시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가치를 결합하는 거대한 도시구조개혁을 이룩했던 것이지요. 그것은 자유로운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이같이 서울과 도시에 대한 전반적인 이론을 바탕으로 김교수는 이제 본격적으로 토론을 벌일 때가 됐다고 말했다. "결국 우리가 후손에게 물려줄 것은 도시와 건축입니다." 김교수는 지식인과 시민들의 더 많은 관심을 촉구하는 것으로 대화를 끝맺었다.

배영대 기자

balanc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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