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실장 통화까지 도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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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박지원(朴智元)청와대 비서실장이 대북 밀사역은 물론 대북 송금에 간여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이 4일 국회 정무위 국감에서 '국정원 도청자료'를 근거로 제기했다.

지난해 朴실장과 대북밀사 요시다 다케시(吉田猛)신일본산업 사장 간의 국제전화 3건을 도청했다는 문건이 근거다. 朴실장은 모두 부인했다.

다음은 鄭의원의 주장.

◇육로관광 성사 요청=첫 통화는 지난해 8월 9일에 있었다.

▶朴실장=육로관광·관광특구·경의선 개통·경제회담·이산가족 상봉 등 문제가 해결되면 2, 3개월 뒤 2천4백만달러를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 10일까지 이 방안의 확정 여부를 알려달라.

▶요시다 사장=이 방안이 확정될 때 오해가 없도록 상기 내용을 문건으로 만들어 통보해 달라.

다음 통화는 이틀 뒤인 11일이다.

▶朴실장=북한의 의중을 파악한 뒤 방북을 추진 중이다.송호경 아태평화위 부위원장으로부터 연락이 없는 상태에서 방북해 일이 잘못되면 나의 정치적 생명이 잘못될 수 있으니 북한의 의중을 판단해 문건으로 송부해달라.

▶요시다 사장=아태평화위에 연락해 판단해 주겠다.

마지막 통화는 29일 이뤄졌다.

▶요시다 사장=북측이 육로관광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돈보다 이 사업으로 입지 약화를 우려한 군부의 반대 때문이다. 9월 중 방북해 북측과 협의할 예정이다.

▶朴실장=DJ 재임 중 남북 간 타결되는 게 유리할 것이다.내가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과 면담하고 싶으니 의사를 전해달라.

◇대북 송금 개입 시비=鄭의원은 또 현대아산이 대북 송금과 관련해 통화한 내용도 공개했다.지난해 6월 1일 베이징(北京)주재 현대아산 직원과 金모 부사장 간 통화다.

▶현대아산 베이징 지사 직원=아태평화위 서기장을 만났는데 '수일 전 현대가 보낸 팩스 내용으론 충분치 않아 요시다가 직접 서울을 방문, 정몽헌 회장을 만나 북측 협상 내용을 전할 것'이라고 하더라. 북측에서 박지원 수석에게 전달할 일이 있으니 만나도록 해달라고 했다. 북측이 도청 문제 때문에 유선으로 말할 수 없어 요시다가 직접 6월 1일 한국을 방문했다가 3일 일본으로 갈 예정이라고 한다. 면담 결과는 4일 평양에 팩스로 보낸다고 했다.급히 주선해달라고 했다.

▶金부사장=급히 주선하겠다.

정형근 의원은 2000년 3월 9일 싱가포르에서 국정원 김보현(金保鉉)3차장이 송호경 부위원장을 만날 때, 그리고 17일, 4월 8일 대북접촉 때 정몽헌(鄭夢憲)현대아산 회장과 김윤규(金潤圭)현대아산 사장이 동행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북 송금에 깊숙이 개입한 것"이라고 말했다.

◇朴실장 해명=지난해 하반기에 요시다 신일본산업 사장의 요청으로 서울에서 그를 두차례 만났다. 그 자리에서 요시다가 '금강산 관광에 대한 현대아산의 미지급금 2천4백만달러를 정부가 대납해 주거나 지급 보증해달라'고 요구했으나 거절했다.문제의 2천4백만달러는 지금까지 지급되지 않고 있으며 지난달 10∼12일 열렸던 '제2차 금강산 관광 당국회담'이 미지급금의 지급 문제를 둘러싸고 결렬된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고정애 기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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