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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하남 국제 사진페스티벌' 시민 가족 사진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4면

지난 달 28일 막을 올린 '2002 하남 국제 사진페스티벌'이 마련한 '하남 시민 가족 사진전'에는 집안에 내려오는 이런 기념사진들이 2백여 점 나와 관람객들 눈길을 끌고 있다.

어느 집에서나 볼 수 있는 가족앨범·결혼앨범·졸업앨범 등 소중한 추억의 한 순간을 기록한 사진들이다. '우리 우정 영원히' 같은 문구가 박힌 학창시절의 추억 한 자락, "남는 건 사진뿐이라니까. 좀 웃어보더라고" 하며 관광지에서 얼결에 어울려 찍은 단풍 모양 스냅 사진 등을 들여다보면 그 침묵 속에 우리의 과거가 부동 자세로 박혀있음을 느낄 수 있다.

사진은 쉼 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우리가 잠시 정지했던 한 지점을 보여준다. 사진은 유한한 생명이 무한한 영생을 각인하기 위해 남긴 죽음에 대한 저항 자국이라 할 만하다. 사진기에 찍히는 순간 우리는 모두 과거가 되지만, 그 옛날은 간직되고 되새겨지기 위해 여기 남는다. 사진술은 현재를 고착시켜 기록하려는 인간의 의지에서 태어났기에 그 어떤 매체보다도 역사와 밀접하게 연을 맺고 있다. 올 '하남 국제 사진 페스티벌'이 내세운 주제가 '사진과 역사'인 까닭이다.

사진의 역사성은 9월 30일 열린 '한·중·일 국제사진심포지엄'에서도 폭넓게 논의됐다(본지 10월1일자 22면). '현대한국에서 사진은 어떻게 지금의 순간을 구성하고 있는가?'란 주제로 발표한 이영준 계원조형예술대학 교수는 "한국 사진은 늘 현재를 보여주지 못하고 복고풍 과거나 꿈에 부푼 미래만을 보여준다"며 "이렇게 시간적 표상이 양분화되면서 상품화(복고)와 스펙터클화(꿈) 되는 추세로만 흐르고 있다"고 분석했다.

'가족 사진전'과 함께 열리고 있는 '국제청년 작가전'에 출품한 40대 이하 젊은 사진작가들의 작품에서도 이런 경향을 엿볼 수 있다. 그럼에도 사진이 우리 현실을 반영하는 사회사의 한 상징임을 읽어내는 건 관람객들 몫이다.

경주 불국사 경내에서 이뤄지는 "사진 한 장 박읍시다"의 평범한 정경을 담은 장석주씨는 각기 다른 위치에 선 여러 군상의 기념 촬영 모습으로 한국 사회를 보여준다. 만물상 가게 주인을 담은 윤정미씨의 사진은 촘촘하게 박힌 사물과 인간의 관계, 그 드러냄과 감춤 속에서 한국 현대사를 돌아보게 만든다. 사라져가는 오지의 분교 아이들을 기록한 이동윤씨, 일그러진 화면 분할로 뒤틀린 한국 아파트촌 얘기를 들려주는 조지은씨 등 사진으로 역사성을 일구려는 젊은 사진가들의 노력이 현실을 찾고 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사진가 김장섭(47)씨는 "아마추어들이 찍은 가족 사진과 전문가가 작품이라고 내놓은 이른바 예술 사진을 나란히 놓고 그 차이와 겹침 속에서 진정한 사진의 역사성을 생각하는 자리를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하루가 다르게 예술로 날아오르는 사진을 다시 땅으로, 현실로, 역사 속으로 되돌리는 작업이 지금 하남시에서 시민들과 함께 이뤄지고 있다. 6일까지 하남시 특설 전시장. 031-790-6533(www.hipf.org).

정재숙 기자

johanal@joongang.co.kr

낡고 빛 바랜 사진 한 장이

있다. 해묵은 앨범에서

떼어냈거나, 문틀 위에

걸려 있던 액자에서 꺼냈음직한

가족사진이다.

우리 집 장롱 구석에도 몇 장쯤

굴러다님직한 누런 인화지가

바스락거리며 세월을 불러온다.

정면 카메라를 바라보고

단정하게 얼어붙은 7명 식구들은

"기억나니? 오래 전

우리가 함께 했던 그 시간을…"

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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