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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경산수 정신 오늘에 되살리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2면

"우리 전통문화를 올바로 계승하고자 진력해 오신 가헌(嘉軒) 최완수 선생님의 문하에서 공부해온 지 어언 이십여 년…이 전시회는 간송미술관에서 가헌 선생님을 모시고 연찬해 온 조형 예술 분야의 문하 제자들이 선생님의 회갑을 기려 마련한 것…법고창신의 가르침 아래 끊임없이 붓끝을 연마해 왔지만…제대로 구현해 냈는지…이 전시회를 계기로 저희들의 자세를 새롭게 다짐하고자 합니다."

3일부터 9일까지 서울 관훈동 백악예원에서 열리는 '송단동연전(松壇同硏展)'의 도록 첫 장에 김천일 목포대 교수가 쓴 머리말이다.

우리 문화유산의 보고인 간송미술관을 37년째 지키며 '간송학파'의 좌장으로 후학들을 길러온 최완수 한국민족미술연구소장(본지 9월 3일자 18면)의 회갑 기념전은 이렇듯 '법고창신'(法古創新:옛 것을 배워서 새 것을 만든다)한마디로 사제가 통한다.

문제는 무엇을, 왜, 어떻게 '법고'하고 또 이를 어떻게 현재에 '창신'할 것인가이다. 지난 30여년 간송미술관이 62회에 걸쳐 봄·가을 정기 기획전으로 수장품을 정리하며 뽑아낸 조선 후기 숙종∼정조기의 '진경(眞景)시대'가 그 실마리가 될 듯하다.

우리 산천의 아름다움을 사생하는 데 가장 알맞은 고유 화법인 '진경 산수화'를 창안한 겸재 정선(1676∼1759)의 정신이 10명 출품 작가들 작품을 이끌어가고 있다.

'진경시대'를 '법고'하는 첫 방법은 임모(臨摸)다. 지나치게 서구 현대미술을 차용해 쓰는 우리 현실에서 벗어나 한국 미술의 전통 가운데 오늘날까지 강한 감동을 주며 뛰어난 예술성을 지닌 고전적인 전범들을 다시 연구하고 모사하는 작업이다.

물론 이 임모는 하나의 과정이지, 결과는 아니다. 고전을 그대로 그려보고 잊혀진 옛 기법들을 익히고 나면 지금 여기에서 그려야할 자기 것을 찾고 현재화해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창신'의 어려운 과제가 기다리고 있다.

김천일씨가 내놓은 수묵 담채화 '노적봉'은 고전적인 문인화의 세계를 탐구한 노력이 돋보인다. 관념적인 형식미만 본뜬 것이 아니라 화가가 몸담고 있는 현실을 문인적인 감각과 취향, 기법으로 해석해 나름의 이론적인 틀을 세웠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도 놓치지 않고 사생한 장인적인 필치와 담백한 맛이 현대판 문인화라 할 만하다.

이태승 용인대 교수가 되살린 고려불화는 오늘날 거의 잊혀지거나 왜곡된 화목의 복원으로 뜻깊다.

비단에 진채로 그린 '금강천수천안 관세음보살탱'은 위에 관음보살을 배치하고 아래에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 상반부를 그려넣은 새로운 시도로 개성있는 도상을 창조하고 있다. 적절한 아교 올리기, 호분과 황토 등의 정교한 배채법, 석청·석록·니금 등의 전통 채색법이 능숙한 선묘와 맑은 담채법과 잘 어우러졌다.

이밖에 고전을 똑같이 모사한 고정한·이창원·임지태. 고전을 약간 변형시켜 재창작한 장지성·손광석, 고전 기법에 나름대로 현실을 사생한 김현철·오병욱·조덕현씨 등이 참가했다.

또 조소를 전공하고 불상 전승에 뜻을 두고 있는 이창원씨는 국보 제83호인 '미륵보살 반가사유상' 모작으로 이 시대의 감각에 맞는 새로운 불상을 시도하고 있다.

간송학파의 동학인 강관식 한성대 교수는 "기법과 기량에 대한 학습을 너무 도외시하고 서구 현대 미술의 겉모습과 아이디어만을 좇아가는 우리의 미술 교육에 대한 반성이란 맥락에서 법고창신의 이런 작업은 하나의 문화운동이나 미술운동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번 전시작들은 그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02-762-0442.

정재숙 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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