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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복합-오피스텔 거리 테헤란로:하늘 가린 초고층 숲… 도로는 종일 주차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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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운동을 많이 하는 마라톤 선수들의 평균수명은 일반인보다 길지 않다. 단기간 무리한 운동으로 체내에 유해 산소가 쌓이기 때문이다. '넘치는 것이 부족한 것보다 못하다'는 사실은 도시계획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허허벌판에 순식간에 고층빌딩 숲이 들어선 서울 강남의 테헤란로 주변도 과밀 개발의 몸살을 앓고 있다. 4대문 밖이란 이유로 10년 넘게 용적률 1천%가 적용돼 고층 주상복합건물과 오피스텔이 숲을 이루고 있는데도 계속 고층 빌딩들이 올라가고 있다. 교통정체는 시간대가 따로 없어 서울시가 공중에 전차를 놓는 방안을 검토할 정도다.

◇포화상태에 이른 개발=4㎞에 걸쳐 강남지역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테헤란로 일대는 현재 40여곳에서 초고층 주상복합건물과 오피스텔 공사가 한창이다. 하늘 높이 올라간 타워크레인의 모습은 20여년째 빼놓을 수 없는 풍경이다.

지난해 서울에 새로 공급된 오피스텔은 모두 1만5천여실. 이중 15%에 해당하는 2천3백여실이 테헤란로 주변에 들어섰다. 올해에도 이 일대에 3천여실의 오피스텔 건축이 허가됐다.

현재 길 양편에 들어선 20층 이상 고층 빌딩만 60여채. 외환위기 이후 외국계 회사와 벤처 회사가 대거 몰리면서 하루 평균 유동인구가 50만명이 넘자 건설업자들과 시세차익을 노린 투자자들은 땅만 있으면 지금도 초고층 빌딩을 올리고 있다.

테헤란로 건물은 높은 층으로 올라갈수록 임대료가 비싸진다. 저층은 고객이 이용하기 편리해도 시야가 워낙 갑갑하기 때문이다. 역삼역 주변 외국계 회사에서 근무하는 김미정(37·회사원)씨는 "초고층 건물이 밀집한 뉴욕에 근무했을 때도 이만큼 답답하지 않았다"며 "점심시간이면 일부러 옥상에 올라간다"고 말했다.

소음 문제도 심각하다. 하루 종일 자동차 소리가 시끄럽고 이면도로를 사이에 두고 20∼30층짜리 빌딩 공사가 벌어지면 주변 건물은 적어도 3년 동안 굴착 등의 소음과 먼지에 시달려야 한다.

테헤란로 뒤편 원룸텔 밀집지역은 지역 과밀화를 부추기는 또 다른 요인이다. 지난 5년간 테헤란로가 걸쳐있는 서초·역삼·삼성·대치동 일대에 들어선 원룸만 1만가구가 넘는다. 주민 이수민(35·회사원)씨는 "지나친 테헤란로 개발이 인근 주거지역까지 망치고 있다"며 "강북의 다가구·다세대 마구잡이 개발이 이곳에선 원룸텔로 재현되는 꼴"이라고 말했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장남종 부연구위원은 "테헤란로 주변은 서울에서 평균 층수가 가장 높을 정도로 과도개발된 지역"이라며 "지금이라도 도시계획을 손질해 개발보다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갈수록 심각한 교통정체=출퇴근 시간이면 테헤란로는 주변 간선도로까지 마비되는 교통지옥이다. 왕복 8차로의 넓은 도로지만 고층 빌딩 숲에서 쏟아져 나오는 차량들을 소화하기에 역부족이다.

분당에서 역삼동까지 차를 몰고 출퇴근하는 심도현(28·회사원)씨는 "퇴근길 정체가 심할 땐 강남역에서 삼성역까지 4㎞ 정도 가는데 한시간 이상 걸린다"며 혀를 내둘렀다. 테헤란로 바깥 차로에 항상 들어찬 불법주차 차량들도 교통정체를 부추긴다.

연면적 3천㎡ 이상 건물 26개동이 몰려있는 테헤란로 끝자락의 아셈지구는 서울의 대표적인 교통지옥이다. 서울시는 아셈지구를 동대문 주변과 함께 교통혼잡 특별관리구역으로 지정해 관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삼성동 H백화점과 역삼동 S회관 일대도 '심각한 교통난으로 택시 정류장을 폐쇄한다'는 안내간판이 세워져 있을 정도로 상습적인 정체지역으로 꼽힌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테헤란로를 지나는 자동차는 하루 평균 9만7천6백여대로 평균 시속이 11.8km에 불과했다. 이는 서울시내 평균인 시속 23km의 절반도 안됐다. 경찰청 교통개선기획실 이철기 실장은 "테헤란로 교통정체는 교통수요를 폭발적으로 유발하는 대규모 상업시설과 대형 오피스빌딩이 주범"이라고 말했다.

교통난이 악화되면서 테헤란로를 등지는 업체도 늘고 있다. 지난 6월 역삼역에서 분당으로 사무실을 옮긴 벤처회사 李모(33)사장은 "테헤란로 일대는 임대료만 비쌀 뿐 교통과 주차 등 업무 환경은 끔찍하다"고 고개를 저었다.

◇골목마다 불법주차=지난달 28일 테헤란로 빌딩 뒤편 유흥가 골목은 불법주차 차량이 점령하고 있었다.

삼성동 D빌딩 앞 골목은 아무렇게나 주차한 차량 때문에 승용차 진입이 어려웠다. 불법주차한 金모(43·회사원)씨는 "D빌딩 주차장에 빈 곳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세워놓았다"며 "15분당 1천원인 유료 주차장을 매일 이용하기는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D빌딩에는 30여개의 회사가 입주해 있지만 주차면은 10여면에 불과했다. 2백m 정도 떨어진 S오피스텔도 마찬가지여서 20여개의 회사가 입주해 있는데도 주차면은 10면도 안된다.

이는 현행 주차장법이 오피스텔 등을 용도상 업무시설로 간주해 세대 수가 아닌 건물 연면적을 기준으로 의무 주차공간을 마련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오피스텔의 경우 연면적 1백50㎡당 주차공간 한 면을 확보하면 되지만 차가 많이 몰리는 테헤란로 일대는 주차상한지역으로 지정해 2백㎡당 한 면만 확보하도록 했다. 교통 혼잡을 완화하기 위한 제도가 오히려 불법주차를 부추기는 셈이다.

오피스텔 업체인 I건설 관계자는 "16평형 오피스텔은 3가구당 주차공간이 한 면에 불과하다"며 "땅값이 워낙 비싸 주차장을 늘리기 어렵다"고 밝혔다.

강남구도 비싼 땅값 때문에 공영 주차장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강남구는 테헤란로 일대에 주차장을 만들어 주차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주차공간 한 면을 마련하려면 9천만∼1억원이 들어 포기한 상태다. 강남구는 대신 학교 운동장이나 공원 지하에 싼값에 주차장을 지어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으나 부지 확보가 힘든 실정이다.

손해용 기자

hysoh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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