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비용 高충격… 득보다 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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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박승 한국은행 총재가 디노미네이션(화폐단위 절하)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예를 들자면,현재 1만원짜리 돈에서 '0' 3개를 떼어내 똑같은 가치의 10원짜리 화폐를 새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지난 4월 취임 뒤 검토를 지시했고, 6월에는 특별 연구반까지 가동시킨 朴총재는 지난달 29일 "임기 내(2006년 4월) 주요 목표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본지 9월 30일자 e1면>

그러나 재정경제부는 "그럴 계획이 전혀 없다"고 밝혔고, 전문가들도 "한은이 화폐단위 변경에 왜 이리 집착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한은의 구상=선진 각국과 비교해 우리나라의 화폐단위가 높다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朴총재는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현재 '조' 단위로는 부족해, 머지않아 '경' 단위까지 등장할 것"이라며 "화폐단위가 너무 높아지면 경제 운용이 아무래도 비효율적으로 흐른다"고 지적했다.

한은 고위 관계자는 "5만원 내지 10만원의 고액권을 만드는 방안도 검토해 왔지만, 고액권 문제는 디노미네이션을 통해 한꺼번에 해결하자는 게 朴총재의 복안"이라고 말했다.

◇재경부 입장=한은이 새 화폐를 만들려면 재경부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한은법 49조). 대통령의 결심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재경부 관계자는 "한은이 이 문제를 공식 제기해 오면 검토해봐야겠지만, 지금으로선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디노미네이션은 일종의 화폐개혁이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들고 경제주체들의 동요도 클 것으로 재경부는 보고 있다. 게다가 남미 국가들처럼 인플레가 극심한 것도 아니고, 국민들이 화폐단위에 불편을 호소하는 상황도 아니다.

◇전문가 견해=LG경제연구원 송태정 연구위원은 "화폐단위를 바꾸는 것은 뭔가 국가적 계기가 있어야 한다"며 "통일이 되면 어차피 화폐개혁이 필요할텐데, 지금 별 이유도 없이 이를 거론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서울 강남의 고소득층을 중심으로 화폐개혁설이 돌아 부동산 투기를 부추긴 측면도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말했다.

국민대 김종민(경제학)교수도 "1백대 1로 화폐단위를 낮추면 1원이 1백원처럼 쓰일 것 같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합리적이지 못하다"며 "심리적 불안감 때문에 공연한 인플레를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연구원 최공필 연구위원은 "가뜩이나 경제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이런 논의가 확산되면 경제에 도움될 게 없다"며 "일단 국민의 81%(상공회의소 조사)가 원하는 고액권부터 발행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광기 기자

kikw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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