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로소티 국세청장, 부자들의 탈세 수법 공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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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1면

퇴임을 앞둔 공직자라면 손에 피 묻힐 일은 되도록 삼갈 것 같은데 찰스 로소티 미국 국세청장(사진)은 예외인 것 같다. 그는 지난주 거액의 세금을 빼먹은 부자들에 일격을 가했다. 지난 몇달간 이들의 탈세 행위를 조사한 결과를 소상히 공개한 것이다.

자본가의 윤리의식이 비교적 잘 확립돼 있다는 미국에서도 세금을 떼먹기 위해 별의별 아이디어들이 다 동원되고 있음이 드러났다.

로소티가 공개한 미국 부자들의 탈세 수법은 세금을 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심리와 대형 회계법인이나 투자은행들의 돈벌이 욕심이 빚어낸 합작품이었다.

"이번에 당신이 낼 세금은 무려 2천만달러에 달합니다. 우리에게 수수료로 5백만달러만 주면 세금을 한푼도 안내게 해 주겠습니다."

유명 회계법인인 언스트&영이 부자들에게 접근한 수법이다. 거부(巨富)들을 위한 절세 가이드라지만 국세청이 보기엔 교묘한 탈세였다.

이들의 주고객층은 고액 연봉자나 주식을 팔아 떼돈을 번 사람들이다.

세금을 빼먹은 과정은 이렇다. 우선 두 사람(부자 고객과 미국에 세무신고를 하지 않아도 되는 외국 금융기관)명의로 가공의 회사를 만든다. 그리고 둘 간에 외환거래를 한 것처럼 장부를 꾸민다. 물론 손실은 부자가 보는 쪽이다. 이 손실은 과세 대상 소득에서 공제된다. 당연히 그만큼 세금이 줄어든다.

미 국세청(IRS)은 이런 식으로 세금을 빼먹은 부자가 지난해만 8만7천1백명에 이른 것으로 추산했다. 그러나 로소티 청장은 조사 인력이 달려 이번에 적발해 낸 대상은 전체의 18%에 불과하다고 토로했다.그는 "이번 싸움에서 우린 이기기도 했지만 동시에 지기도 했다"고 술회했다. 나머지 82%에 대해선 단속의 손길이 미치지 못했음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는 인력 확충을 위해 한해 22억달러의 예산을 더 쓴다면 추가로 거둬들일 수 있는 세금이 연간 3백억달러에 달할 것이라고도 말했다.

IRS는 이번에 드러난 탈세 수법을 앞으로 전면 불법화하는 동시에 적발된 부자들에게 탈루한 세금과 그동안의 이자를 모두 회수하고 나아가 벌금까지 물리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같은 엄포가 얼마나 먹힐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이미 세금 빼먹는 재미를 본 사람들이 많은 데다 새로운 탈세 가이드가 선보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뉴욕=심상복 특파원

sims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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