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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19>"이것은 위대한 휴머니즘 영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2면

본명보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서 유대인 탈출을 도왔던 사업가 오스카 쉰들러로 우리에게 훨씬 친숙한 배우 리암 니슨(50). 1996년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은 '마이클 콜린스' 이후 이렇다 할 화제작이 없던 그가 오랜만에 원숙한 연기력을 과시한다. 침몰 위기에 놓인 소련 핵잠수함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K-19'(10월 3일 개봉)의 충직한 부함장 미하일 폴레닌 역을 맡은 그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K-19'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는 등 그를 대스타의 반열에 안착시켰던 '쉰들러 리스트' 이후 근 10년 만에 출연하는 대작이다. 이 영화는 할리우드 영화로서는 이례적으로 냉전 시대 미국의 주적(主敵)이었던 소련의 군인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미국 언론들은 벌써부터 니슨을 아카데미상의 유력한 후보로 점칠 정도다.

이 영화는 60년대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소련 최초의 핵 잠수함이던 K-19가 미국을 견제하려 무모한 출항을 시도해 핵폭발의 위기를 맞고, 이를 가까스로 저지한 대원들이 귀향 후 방사능 후유증으로 모두 사망한 사건이다. K-19의 군인들은 자신들의 몸을 던져 제3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막은 셈이었지만 소련 정부는 40년 동안 이를 비밀에 부쳤다.

대본을 받아든 니슨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던 것은 이러한 보기 드문 설정이었다. "지금까지 전적으로 소련의 관점에서 그려진 냉전 영화는 단 한 편도 없었습니다. 미국인들이 만드는 소련인들의 이야기, 미국의 적이었던 그들을 '인간'으로 받아들인 최초의 영화라는 점이 저를 몹시 흥분시키더군요."

그러면서 그는 "이 작품을 애국주의가 아니라 휴머니즘을 그린 영화로 봐달라"고 주문했다. "잠수함이라는 폐쇄된 공간에 방사능이 누출된 극도로 어려운 상황에서 이 소련 군인들은 서로를, 나라를, 또 세계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로 결정합니다. 사람 냄새 가득한 이 휴머니즘이 관객들에게 깊은 호소력을 가질 거라 직감했습니다."

선원들의 반란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함장을 배신하지 않는 폴레닌 역을 위해 그는 실제로 폴레닌의 아내를 만나기도 했다. "그녀는 남편이 유머 감각이 뛰어나 매일 자신을 웃겨줬다고 말하더군요. 극 중에서 폴레닌이 그렇게 그려지진 않았지만 영화를 찍기 전 접했던 그의 인간적 면모가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아일랜드 출신인 그는 딱딱하고 격식을 차리는 듯한 러시아식 악센트를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공동 주연을 한 해리슨 포드는 그와 딱 10년 차이 나는 대선배. 니슨은 포드를 가리켜 "매우 지적이며 자신의 일에 헌신적인, 정말 멋진 배우"라고 설명했다. 호흡은? 물론 최상이었다.

"우리 두 사람의 공통점은 연기에 관한 한 '경제학자'라는 점이죠. 둘다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이끌어내려고 합니다. 우리는 그저 서로의 리듬을 감지해 그에 따라 움직였고, 배역을 분석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브로드웨이 연극 무대에도 자주 서는 배우다. 올초 아서 밀러 원작의 '크루서블'로 토니상 후보에 지명되는 등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영화와 연극은 서로 다른 근육을 사용하는 것과 같습니다. 연극은 제 연기의 뿌리를 기름지게 만들죠."

그는 요즘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의 각본을 썼던 리처드 커티스 감독의 로맨틱 코미디 '러브, 액추얼리'를 찍고 있다. 또 사제 역으로 출연한 마틴 스코시즈 감독의 '뉴욕의 갱들'도 12월 개봉한다. 그는 영국의 저명한 연극·영화 연출가였던 토니 리처드슨과 대배우 바네사 레드그레이브의 딸인 배우 나타샤 리처드슨과 6년 전 결혼해 두명의 아들을 두고 있다.

기선민 기자 murph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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