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주 특구 감상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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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북한은 신의주를 '특별행정구' 형태의 경제 특구로 지정하고 화교 사업가 양빈(楊斌)을 초대 행정장관으로 임명함으로써 우리 모두를 놀라게 했다. 가격과 환율을 현실화한다는 경제관리 개선 조치에 이어 나온 이 놀라운 조치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북한 당국이 국내 사정상 개혁·개방을 공식적으로 천명하지는 않았지만, 내심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로의 궁극적인 전환을 목표로 이러한 조치를 하게 된 것으로 봐야 할까. 아니면 위협적인 미국과의 정면 충돌을 피하고 일본으로부터 최대한의 경제협력을 확보하기 위해 장기적인 비전 없이 취한 임시방편적인 깜짝쇼일까. 또 아니면 현 체제 유지에 필요한 달러 자금 조달을 위한 활동이 손쉬운 국내무대를 마련하려는 것인지, 아직은 알 길이 없다.

신의주 특구를 통해 북한 경제가 얻을 수 있는 긍정적 효과부터 한번 생각해 보자. 물론 북한은 특구가 필요로 하는 중간재와 물류서비스를 공급하는 것과 같은 '이웃 효과' 이외에 중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다음 세 가지 중요한 효과를 노릴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북한 근로자들의 고용효과다. 물론 이 고용효과는 특구 입주 외국기업들이 북한 근로자들을 최대한 써 줄 때 가능한 것이다.

둘째, 기술 및 경영기법 이전 효과다. 특구 입주 기업들은 북한 근로자들의 생계유지를 위한 단순한 일자리 제공뿐 아니라, 근로자들에게 새로운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값진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북한기업과 기업인들은 특구 진출 외국기업들로부터 각종 경영기법을 직·간접적으로 전수받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북한 경제와 격리돼 있는 특구 내에서 활동하는 북한 기업의 수가 많지 않다면 이러한 경영기법 이전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셋째 효과로는 특구행정과 관련된 북한 관료들의 경험 축적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시장경제 체제에 익숙하지 않은 관료들이 얻을 수 있는 현지훈련 효과로서,이는 특구행정에 북한 관료를 얼마나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어쨌든 기술과 경영기법을 전수받은 근로자, 기업인들과 함께 이들 관료들은 추후 북한 경제가 시장경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유용한 인적자원이 되는 것이다.

만약 북한 당국이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로의 전환이란 장기 비전 아래 경제 특구 아이디어를 냈다면 이러한 세 가지 효과를 최대화할 수 있는 구체적 계획을 갖고 있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북한 당국의 진의 파악을 위해 이러한 측면에서 특구 조성과정을 잘 지켜봐야 하겠다.

이와 관련해 특구 조성을 위해 현 신의주 주민 20만여명을 외부로 강제 소개시킨다는 계획은 시장경제 체제 구축을 위한 첫 조치로서는 모순(矛盾)된 것일 뿐 아니라, 이들 원주민 대신 많은 중국 근로자와 기업가들을 입주시킨다면 북한 경제가 얻을 수 있는 인력양성 효과는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점이 지적돼야 할 것이다.

전술한 특구 효과는 물론 외국 기업을 최대한 유치한 이후에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북한 당국이 특구 조성에 필요한 사회간접자본 및 각종 인센티브 제공과 함께 외국 기업들이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는 신뢰 구축을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하느냐를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북한 당국과,이제 곧 방북하게 될 미국 특사 간에 합의될 내용이 우리 모두의 큰 관심사인 것이다.

북한은 중국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작은 규모의 나라이기 때문에 특구가 잘될 경우 이 소식은 전국에 쉽게 확산될 수 있어 북한 주민의 상대적 박탈감을 자극하게 되고 급기야 사회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측면을 북한 당국이 모를 리 없기 때문에 북한의 특구 조성 진의를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북한 당국의 특구지정이 궁극적인 시장경제 체제로의 전환을 위한 조치의 일환이기를 기대하는 한편 특구 조성과정을 좀더 주의 깊게 지켜보면서 신중히 대응해 나가야 하겠다.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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