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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32>제103화人生은나그네길: 36.남진과 나훈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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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주마간산이지만 1960년대와 70년대 초 나를 중심으로 한국 가요계를 이야기하면서 반드시 언급해야 할 사람이 가수 남진(57)과 나훈아(55)다.

둘 다 잘 생긴 쾌남(快男)이었지만 노래 스타일은 달랐던 60∼70년대의 풍운아들이었다.

60년대 중반 비슷한 시기에 데뷔해 이후 한치의 양보도 없는 라이벌로서 한국 가요의 상업화 바람을 몰고온 주인공들이다.

이들의 급성장으로 가요계의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조용한' 60년대에서 '파란의' 70년대로의 이행이랄까. 이들의 경쟁 과정에 팬들이 개입하면서 스타성이야말로 최고의 상품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70년대 초반 두 사람의 반대편에 이른바 통기타 가수들이 포진하면서 관객들의 취향도 점차 개성화했다.

남진과 나훈아의 선의의 경쟁이 불미스런 일로 비화한 사건이 일어났다. 73년 9월 시민회관(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나훈아 리사이틀 공연 때였다. 공연 도중 군 특수부대 출신 모씨가 "남진이 시켰다"며 깨진 맥주병으로 나훈아의 얼굴에 자상을 입힌 것이다.

결국 일을 저지른 뒤 남진에게 대가를 요구하려는 정신 이상자의 범행으로 밝혀졌지만 이 일로 팬들은 극단적으로 갈라서 감정싸움을 하기에 이르렀다.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두 스타의 불화는 가요계 전체의 불행이었다.

그러나 경쟁을 통한 시너지 효과로 가요계의 볼륨이 커졌다는 긍정적인 면도 없지 않았다.

본명이 김남진인 남진(현 한국연예협회장)은 65년 '서울 플레이 보이'로 데뷔했다. 경복고 후배여서 관심이 특별했다. 이 무렵 나는 '가면 무도회'라는 라디오 드라마의 주제곡(황문평 작곡)을 불렀는데 나중에 남진이 이 곡의 음반을 내기도 했다. 인연치고는 좀 별났다.

남진은 전남 목포가 고향으로 그 지역 국회의원의 아들이었다. 마치 엘비스 프레슬리를 떠오르게 하는 곱상하면서도 귀공자 같은 청년가수로 뭇 여성팬들을 녹였다. 화려한 무대 매너와 눈웃음이 '상표'였다.

그가 데뷔 이후 유력한 스타로서 팬들의 사랑을 받게 된 결정적인 노래는 '울려고 내가 왔나''가슴 아프게'였다. 남진은 변형된 트로트 창법으로 자기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구축했다. 이 가운데 향수를 달랠 겸 정두수 작사·박춘석 작곡의 '가슴 아프게'을 독자들과 함께 불러본다.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다면/쓰라린 이별만은 않았을 것을/해 저문 부두에서 떠나가는 연락선을/가슴 아프게 가슴 아프게 바라보지 않았으리/갈매기도 내 마음 같이 목메어 운다."

남진보다 두살 아래인 나훈아(본명 최홍기)는 부산 사나이였다. 마도로스인 아버지 덕분에 궁핍을 모르고 서울에서 하숙을 하던 유학생이었다. 67년 '천리길'로 데뷔했는데, 그 무렵 국도극장의 나훈아 리사이틀에 내가 찬조 출연해 '하숙생'을 같이 부르던 기억이 새롭다.

당시 사회자는 MBC 아나운서였던 변웅전씨였다. 나훈아를 처음 만났을 때는 다소 사납고 무섭게 생긴 친구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극장 무대에 같이 서면서 행동거지를 살펴보니 무대에 임하는 자세가 아주 진지했다. 대성할 가수라는 예감같은 것이 들었다. '천리길'은 한동안 인기를 누리다가 배호의 '황금의 눈'을 표절했다 하여 논란을 빚기도 했다.

나훈아는 정통의 트로트 계보를 잇는 대형 가수다. 그의 창법은 국악 스타일의 뒤집고 꺾는 맛이 일품이었다. 언젠가 그로부터 들은 이야기인데,아마 어린 시절 어머니를 따라 다니며 본 국악 공연이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한다. 나훈아는 어쩌면 '터프가이'의 원조인지도 모른다. 미끈한 귀공자 스타일보다는 울퉁불퉁한 박력의 남자를 좋아하는 여성들이 그를 따랐다.

손석 작사·유현석 작곡의 '사랑은 눈물의 씨앗'은 두말할 나위없는 나훈아의 출세작이다.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먼훗날 당신이 나를 버리지 않겠지요/서로가 헤어지면 모두가 괴로워서 울테니까요."

이 노래는 남자에게 버림받으면 그저 울던 당시 여성들의 연애정서를 그대로 반영해 인기를 모았다. 남진도 그렇지만 30년 넘게 스타성을 잃지 않는 나훈아를 보면 참 대견스럽다.

정리=정재왈 기자

nicola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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