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塔은 계속 기운다 ?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지난 23일 대전 문화재청(청장 노태섭)과 서울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김봉건)는 일대 비상이었다.

국회 문광위 소속 한나라당 신영균의원이 경주 불국사 다보탑과 석가탑, 그리고 감은사지 석탑이 심하게는 1도까지 기울어진 데다 약한 지반으로 인해 '기울어짐 현상'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는 국정감사 자료를 공개했기 때문이다.

문화재청에는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윗분'들의 전화가 빗발쳤고, 담당 기관인 문화재연구소는 부랴부랴 보도자료를 만들어 오후 11시 문화재청 홈페이지(www.ocp.go.kr)에 올리는 부산을 떨어야 했다. 대부분의 신문들이 신의원의 자료를 여과없이 받아들여 '국보들의 안전에 이상이 있다'는 기사를 보도했고 심지어 이탈리아 피사의 사탑에 비교할 정도였다.

문화재연구소 측은 24일까지도 황당하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정작 신의원이 입수한 고려구조엔지니어링의 정밀 안전진단 결과 보고서에는 '탑들이 기울어져 있고 지반의 지지력이 탑의 과도한 무게를 지탱하기에는 약하다'는 내용은 들어있지만 기울어짐 현상이 진행되고 있다는 분석은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문화재연구소 윤근일 미술공예실장은 "고려구조엔지니어링은 탑들의 기울기 측정을 한차례밖에 실시하지 않아 '기울어짐 현상이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할 만한 근거 자체가 없다"고 말했다.

사실 이 소동은 처음이 아니다. 고려구조엔지니어링의 진단 결과를 보고받은 문화재청은 지난해 12월 구조물 안전 전문가가 포함된 문화재위원회를 소집, 현장 실사를 했고 '구조에 문제가 있지는 않다'는 결론을 내렸었다. 문화재 연구소가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세차례 측정했을 때도 기울어짐의 진행은 없었다.

문화재를 잘 간직하는 일은 긴요하다. 하지만 구체적인 근거도 없이 문제점을 터뜨리고 매스컴이 이를 좇아 호들갑을 떠는 식으로 될 일은 아니다. 진정으로 문화재를 사랑하는 방식을 찾아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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