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대북 지원 실체 밝혀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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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현대상선·현대아산이 금강산 관광사업도 부실해진 판에 대북 비밀지원설의 한복판에 놓이게 됐다. 그러나 이 의혹은 남북을 넘나드는 정경유착의 새로운 유형일 수 있고, 또한 현대그룹과 관련해서는 현 정권 들어 빅딜 등 특혜지원의 논란이 그치지 않아온 점을 감안하면 그 진상이 철저하게 규명돼야 한다.

국회 정무위에서 오간 공방은 아직까지는 안개 속이다. 현대상선 측은 4천9백억원을 대출받아 용도대로 썼으며 금강산 관광사업의 주체인 현대아산에 대한 지원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현대 주변에선 이 돈의 상당부분이 현대아산으로 흘러들어갔다는 얘기가 그치지 않고 있다. 여기에 현대 측은 당시 제2금융권의 자금회수 압박에 대처해 지원을 받았다 하나 하필이면 주채권은행을 제치고 산업은행이 대출에 적극 나섰는지 그 자체가 의문이다.

또한 현대 계열사들은 산은의 대출지원 직전에 4천5백억원을 현대아산에 자본금 형식 등으로 출자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특히 경영이 어려웠던 현대상선도 증자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정부의 강력한 개입이 없었다면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뒤늦게 산은총재가 된 엄낙용씨가 안기부 차장을 만나고 청와대에서 고위 경제관료들에게 이 대출문제를 거론했다는 것도 회수가 어렵다는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부산을 떤 게 아니었겠는가.

대북지원설의 실체 규명은 현대상선 일개 기업이 아닌 남북정책 전반에 걸친 중대한 문제다. 그러나 경제관료들은 하나같이 청와대에서 정식 대책회의가 없었고 자세한 것은 모르는 일이라며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더구나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 등 주요 현대 관계자들이 국회의 출석요청도 무시한 채 해외로 나돌고 있다. 현대 측은 발뺌만 하지 말고 이제라도 국회에 나와 진실을 밝히는 게 기업을 위해서나 남북관계의 장래를 위해서도 온당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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