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감 아쉬운 '뛰자 ! 한국 여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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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세간에 화제를 몰고 온 '뛰자! 한국 여성' 시리즈에 대해 할 말이 많다. 여성의 잠재력을 올바른 사회 형성으로 유도하자는 기획 의도는 크게 환영할 만하다. 그런데 현재까지 나온 제1부(1회-9월 6일, 2회-10일, 3회-14일)를 보면 접근 방식이 그렇게 균형 잡혀 있는 것 같지 않다. 무엇보다 여성을 사회화하자는 취지에 걸맞지 않게 현재의 여성 상황을 너무 개인의 문제로 축소해 버린 감이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육아·양로·자녀 교육은 물론이고 식사 준비와 세탁 등 기초적인 재생산 노동조차 모두 주부들이 하든가, 아니면 개별적으로 상당히 비싼 서비스를 사야 한다. 여기에 보수도 남성보다 훨씬 낮아 여성들로서는 우선 경제적으로 타산이 맞지 않아서라도 사회 활동보다 전업 주부를 택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재생산을 위한 노동의 상당 부분을 사회가 맡아주거나 적은 비용으로 해결할 수 있는 선진국이나 중국·동남아시아 같은 나라들과 단순 비교를 해 "한국 여성이 가정에 안주하고 있다"고 매도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전업주부인 여성의 행태를 올바르게 분석하려면 눈에 띄게 부정적인 측면만을 다룰 것이 아니라 이들이 가정에서 하는 일이 사회·경제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총체적으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여성들이 가정에만 안주하려는 배경엔 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이데올로기적인 측면도 크게 작용한다. 이른바 '팔자 센' 여자와 '유복한' 여자의 대조는 여전히 여성들의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이런 이데올로기는 결코 여성들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가부장적 유교 사회에서 수백 년 이상 대물림해 왔으며, 현재도 주류 매스컴을 비롯한 대부분의 교육 장치들을 통해 고스란히 재생산되고 있다. 신문이나 잡지를 뒤져보면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검소한 생활 속에 사회 기여나 자신의 내면 성장을 위해 부지런히 사는 여성들을 도와주는 기사들이 더 많은가, 아니면 편안히 앉아 소비하면서 의식주의 겉모양을 꾸며야 남편의 사랑과 사회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부추기는 기사들이 더 많은가.

올바른 인간상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제대로 된 교육이 있어야 키워지는 것이다. 가정에만 안주하지 않는 사회적인 여성을 건전하게 육성하려면 사회가 그런 교육에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대학까지의 교과 과정이 현실 생활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널리 인정되고 있지만, 그 후에도 여성들이 접근할 수 있는 교육 장치라고는 광고 투성이 텔레비전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이번 시리즈의 대상이 중산층, 그것도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계층에 치우친 느낌이 든다. 고학력 여성보다 저학력 여성의 사회 활동 비율이 높다는 것은 사회 활동을 하기에 대단히 불리한 상황에서 많은 여성이 생계를 위해 일해야만 하는 현실을 말해주는 게 아닐까. 이럴 때 그 여성은 어떤 피해를 감수하고 있으며, 그런 피해를 줄이고 도와주기 위해 사회나 언론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본질적으로 다뤄주기 바란다.

경제면의 '또 한번의 '개국' 뉴라운드-도전과 기회'는 복잡한 사안을 간결하게 정리해 사회적인 인식을 형성하고자 하는 노력이 돋보였다. 아쉬운 것은, '대세론'을 강조하다 보니 대안을 찾는 데 소극적이란 인상을 주는 경우가 있었다는 점이다. 특히 16일자 '험난한 쌀개방 재협상'에서 경쟁력이 있는 농가만을 선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보다는 가능한 한 많은 농업인구를 끌어안을 수 있는 대안을 제시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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