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주 특구] '북한속 홍콩' 만들기 실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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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북한 신의주시 일대를 자본주의식 경제특구로 만들려는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구상이 한층 더 구체화됐다.

22일 공개된 신의주특별행정구 기본법<표 참조>은 "행정구를 국제적인 금융·무역·상업·공업·첨단과학·오락·관광지구로 꾸린다"는 야심찬 계획 아래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법적 토대를 담고 있다.

외교·국방 등 극히 예외적 부문을 제외하고 사실상 독립적 지위를 누리는 특구를 만든 것은 반세기 동안 북한의 행태로 볼 때 대단히 파격적이다. 김정일의 '마지막 승부수'라고 볼 만하다.

한 북한 전문가는 "입맛에 맞게 걸러진 정보에만 익숙했던 金위원장이 지난해 1월 중국 상하이(上海)를 둘러본 뒤 적잖은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며 "중국·홍콩·베트남과 유럽지역까지 경제전문가를 파견하는 등 북한식 특구 설정을 준비해 왔다"고 설명했다.

물론 목표는 투자유치와 외화획득에 맞춰져 있다. 기본법이 특구 내 기업에 대해 "공화국의 노력을 채용하도록 한다"고 규정한 데서도 풍부한 노동력을 통해 외화획득에 나서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신의주 특구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는 아직 점치기 어렵다. 홍콩과 중국 선전(深) 등지의 장점만을 짜깁기한 모델이 신의주에서 뿌리내리려면 법적·제도적 후속조치가 뒤따라야 하며, 나아가 북한과 중국의 특구들이 처한 지정학적 여건이 다르고 미국의 북한에 대한 적대적 자세 등 국제정치적 여건도 넘어서야 할 과제다. 미국은 북한이 신의주 특구 지정 사실을 내외에 알린 뒤인 20일 북한을 여전히 '악의 축'으로 지목한 '국가안보전략'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보다 과감한 '자본주의 실험'이 가져다줄 북한 체제에 대한 부담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도 주목거리다. 북한 보수세력의 핵심인 군부 등이 이같은 개혁조치를 방해하고 나서지는 않을 것인지도 일부에선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

신의주 특구의 성패는 결정적으로 북한의 의도대로 외국의 투자가 이뤄질 것인지다. 제도적 장치는 어느 정도 갖췄다고 해도 외국기업들이 입맛대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질 수 있을지는 두고봐야 한다. 신의주가 처한 지정학적 여건상 가장 우선적으로 진출할 기업은 아무래도 남한 기업들이다. 그러나 남한 기업들의 활동은 다른 외국기업에 비해 북한 주민들에게 보다 민감한 영향을 주고 그만큼 북한 체제에 대한 부담도 커질 수 있다.

이영종 기자

yjlee@joongang.co.kr

<특구 기본법 내용>

[법적 지위]

-입법·사법·행정권 부여

[정치·외교]

-외교권은 국가가 보유

-행정구 명의로 대외사업 가능

-행정구 여권 발급

-행정구가 북한 내 타지역·다른 나라로의 이주·여행 절차 지정

[경제·특구]

-토지 개발·이용·관리 권한 부여

-토지 임대기간 2052년까지

-북한 노동력 채용

[문화·주민권리]

-성별·국적·정견·신앙에 따른 차별 없음

-외국인도 주민과 같은 권리와 의무 보유

[입법·검찰]

-입법회의가 입법권 행사

-주민권 지닌 외국인도 입법의원 피선 가능

-구·지구 재판소·검찰소가 사법권

-최종 재판기관은 구재판소

[행정]

-장관이 행정구 대표

-장관이 행정부 성원·구검찰소 소장 임면권 보유

[상징물]

-북한 국장·국기와 행정구 구장·구기 함께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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