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의 향기'는 어떨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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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71면

조선시대 선비들은 서화를 가려 볼 줄 아는 안목을 높이 쳤다. 자연과 조형의 아름다움을 보고 느끼는 일을 인생의 큰 즐거움으로 알았던 선비들은 멋쟁이였다. 12월 20일까지 서울 대현동 이화여대 박물관(관장 윤난지)에서 열리고 있는 '선비문화의 여러 빛깔'은 바로 이 선비들의 다양한 취향의 세계를 시(詩)·서(書)·화(畵)를 비롯해 문방구와 가구 등으로 살펴보는 묵향 그윽한 기획전이다.

전시장은 선비들의 생활을 바로 옆에서 엿보듯 오밀조밀 꾸며졌다. 글씨만 덜렁, 문방구는 따로 식으로 전시품을 분리해서 내놓지 않고 선비들 삶 속에 녹아있는 정신세계를 조목조목 어우러지게 엮었다. 시가 새겨진 백자청화가 시첩과 나란히 놓이고, 반짝이는 나비 그림 한 켠에는 화려하고 아기자기한 연적과 필통이 들어앉았다. 선비들이 머물던 사랑방의 운치도 그대로 되살렸다.

이번 전시에서 특히 돋보이는 점은 제목 그대로 선비문화가 지닌 여러 측면을 한 자리에서 잘 짚어줬다는 것이다. 선비문화라 하면 흔히 높고 맑은 이상향의 정신세계만을 생각하는데 그 이면에 멋과 맛이 흥건하다는 얘기다.

담백한 서정과 운치가 있는가 하면 난만함과 유연함이 넘치고, 대쪽같은 절의와 기개가 충만한가 하면 조화와 풍요에다가 여유로움과 해학이 난만하다.

자하 신위와 북산 김수철의 고졸한 문인화를 보다가 남계우의 화사한 나비 그림을 접하면 선비문화의 폭과 깊이가 얼마나 깊고 넓었는가를 알 수 있다. 잘 생긴 백자청화가 수더분한 며느리 같다면 각종 동물들 모습을 재미나게 빚은 문방구들은 골목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개구쟁이들을 닮았다. 겸재 정선, 표암 강세황, 우봉 조희룡 등 선비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2백여점 작품들이 다 제각기 멋을 뿜어내니 그 빛깔이 기기묘묘하다.

그 사이사이에 적혀있는 글귀들도 선비문화로 들어가는 좋은 안내자들이다. 사랑채에 걸어두었음직한 시 한 수에서는 사랑방 주인의 인생관이 흘러나온다. "황금을 모아서 자손에게 남겨주어도/다 지킬 수 없고/책을 모아서 자손에 물려주어도/다 읽을 수 없으니/가만히 덕을 쌓아/자손 위하는 계책을 삼는다."

전시를 기획한 나선화 학예연구실장은 "가을 하늘처럼 청정한 선비문화를 보면 번잡했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다"며 "이 전시가 관람객들에게 조선의 선비들처럼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을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02-3277-3152.

정재숙 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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