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勢 거부해야 승산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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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5면

제조업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경기부진과 만성적인 공급과잉, 중국의 급속한 추격, 젊은이들의 기피로 인한 인력부족 등이 그 이유다. 그래서 '물건 만들기'의 달인들도 자꾸 서비스와 소프트로 업종을 바꾸는 추세다. 그러나 앞서가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대세에 과감하게 역행하는 기업들도 생겨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기업들로 인해 성숙산업이 성장산업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낡은 주택이 리모델링되듯이.

세계 굴지의 미디어그룹인 월트디즈니가 가전사업에 눈독을 들이는 것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가전의 대명사인 소니는 디즈니를 벤치마킹하면서 미디어부문을 키우고 있는데,정작 디즈니는 소니의 아성인 가전사업으로 진출하려는 것이다. 디즈니는 자신의 강점인 캐릭터와 디자인 실력을 이용하면 기존의 가전제품과는 확연히 다른 제품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제1탄은 바로 무선전화기. 자신이 만든 만화영화의 주제가를 호출음으로 사용하는 등 독특한 색깔을 강조하게 된다. 생산은 모토로라에 위탁하고 브랜드는 디즈니와 모토로라를 같이 사용할 예정이다. 이 무선전화기는 당장 올 가을부터 북미와 영국시장에 선보이게 되는데, 디즈니는 시장의 반응을 보아가며 내년부터는 TV와 DVD 등을 출시해 가전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생각이다.

세계 최대의 가전박람회인 CES(Consumer Electronics Show)는 매년 1월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가전업계의 큰 잔치다. 그런데 지난해와 올해 2년 연속 CES의 기조연설을 맡은 사람은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였다. PC의 황제인 빌 게이츠가 가전업계의 잔치에 계속 얼굴을 내미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디지털화·네트워크화되는 가전산업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데다,PC를 평정한 '윈도'실력이면 가전에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게임기 엑스박스를 만든 마이크로소프트는 TV사업에도 진출할 계획이다.중국이 가전왕국으로 등장하면서 일본과 한국, 대만 등의 전통적 강자들이 하나둘씩 무릎을 꿇고 있으나, 소프트로 무장한 기업들이 엉뚱하게(?) 도전장을 내밀고 있는 것이다.

joyoon@s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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