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호가 종간호"문예지 운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지난 5월 창간된 계간 문예지 『문학생산』(서울타임스刊)이 제 2호인 올 가을호를 내지 못하게 됐다. 창간호가 곧 종간호가 될 운명인 것이다.

이 잡지의 창간호는 소설가 고 채영주씨가 숨지기 3∼4일 전 보낸 유작(遺作) 중편 소설 1회분을 실은데다 이광호·황종연씨 등의 평론이 주목을 받아 몇몇 신문에 보도되는 등 창간 문예지로서 적지않은 조명을 받았다.

그런데도 2호의 원고청탁과 편집까지 끝내놓고 발행이 중단됐다. 원고 청탁을 했던 문인들에게는 발간된 책 대신 발행 중단에 대한 사과문이 전달됐다. 그 속사정을 살펴보면 문예지 창간은 문학에 대한 열정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알게 한다.

편집위원인 평론가 김인호씨는 "창간 당시 발행인이 '최소한 10호까지는 책임지겠다'고 말했는데 최근 건강상의 이유로 연락 조차 하기 어려워졌다"고 털어놨다. 실질적인 문제는 결국 발행 비용이다. 게다가 창간호 3천5백부의 밀린 인쇄비 문제까지 걸려 있단다.

발행인과 연락이 되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상황을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이유야 어떻든 문학계에 공적으로 출생신고를 한 창간 문예지가 발행인 개인의 사정으로 원고 청탁 후 일종의 '부도'를 낸 것에 대해 문학인들은 원망의 눈빛을 감추지 않을 요량이다. 채영주씨 유작 2회분 게재는 어떻게 할 것이며 원고 청탁에 응한 문인들, 그리고 가을호를 위해 대담에 응한 원로 작가들은 또 얼마나 황당해 하겠는가.

김인호씨의 다음과 같은 뼈아픈 이야기는 그래서 최근 문예지 발간이 붐인 문단 풍토에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전하다. "여러분들께 죄송하고 송구스럽다. 차라리 창간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발행인 한 명에 의지하는 문예지가 되지 말아야 한다."

우상균 기자

hothead@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