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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경제개혁 어디로 가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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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일본과의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의 개혁·개방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개방 확대와 함께 북한이 시행한 7월 1일 경제개혁 조치의 핵심은 ▶책임경영 강화와 인센티브 도입▶가족영농제 도입▶물가와 임금 인상▶배급제 일부 폐지▶환율 인상 및 금융기관 이원화 등이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변화를 놓고 어느 나라 방식을 따르는지, 시장경제로의 이행인지 아닌지, 점진적 개혁이 가능할지 등에 주목하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들은 나라마다 다르긴 해도 '전통 사회주의→개량 사회주의→시장 사회주의→체제 전환'의 과정을 겪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들과 비교할 때 북한의 개혁·개방은 중국의 초기 개혁과 비슷하긴 해도 여러 단계가 혼합돼 있는 등 '북한식'이라는 평가가 많다.

◇농업 개혁은 1970년대 중국식=북한이 한 가족이 경작할 수 있는 농지를 30∼50평에서 4백평으로 늘린 것은 78년 책임량 이상의 생산물을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도록 한 중국의 '농가생산책임제'를 연상시킨다. 이 제도 도입으로 중국은 79∼84년에 곡물 생산이 23.8% 늘었고, 농민의 소비력 증대는 경공업 제품의 생산을 자극했다.

경영에 대한 간섭을 줄이고 기업의 재량권을 확대한 점은 84년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회의에서 채택된 '경제 개혁에 관한 결정'과 비슷하다. 이 때부터 기업은 일부 이익을 스스로 처분할 수 있었다.

◇은행 이원화는 시장경제 신호탄=북한은 그동안 단일은행 제도를 채택해왔다. 중앙은행이 화폐 발행은 물론 통화량 조절, 지급 결제뿐만 아니라 주민 예금 수신, 기업 대출, 보험 등 상업 금융기관의 업무까지 담당해왔다. 그런데 최근 신탁은행을 설립, 이원적인 은행 제도를 채택했다. 따라서 북한은 중앙은행에서 맡아온 상업은행 업무를 신탁은행으로 넘겨 기관·기업에 대한 국가자금 지원을 중단하는 대신 신탁은행에서 대출받아 쓰도록 하는 방향으로 자금 공급 체계를 바꿀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자금 공급 체계 개편은 기관·기업의 독립채산제를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아울러 신탁은행이란 이름으로 볼 때 신탁상품을 통해 주민들이 갖고 있는 현금을 빨아들여 인플레를 수습하려는 뜻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환율과 관세를 현실화한 점도 머지않아 북한의 외환시장 자유화 폭이 커질 수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통일정책연구소 정형곤 연구위원은 "북한의 7월 1일 조치는 사회주의 개혁 초기와 체제 전환기의 모습을 함께 담고 있다"고 분석했다.

◇외부에서의 물자 공급이 열쇠=가격과 임금의 인상을 통한 가격·임금 현실화는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흔한 일로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의 배경을 물자부족에서 찾는다. 생활필수품이 부족한 상황에서 가격인상 요인을 막아온 끝에 가격을 현실화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가족영농제와 인센티브제를 도입해 생산 증대를 꾀하려 든다는 것이다.

따라서 물자 확보 여부가 이번 개혁의 성패를 가늠하는 열쇠로 지적된다. 당장은 국내 생산을 기대하기 어려우므로 외부 지원이 필요하며 개방을 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 전문가들은 일본과의 정상회담도 이런 측면에서 본다. 한국개발연구원 조동호 북한경제팀장은 "북한이 외부에서 자원을 이른 시일 안에, 그것도 한꺼번에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번 개혁은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공업화 과정 북한, 급진적 개방·개혁 가능성도=중국과 베트남이 사회주의 체제를 점진적으로 바꾼 경우라면 러시아와 동유럽 국가는 급진적으로 전환한 국가들이다. 점진적 개혁 국가들이 체제를 유지한 데 비해 급진적 개혁을 한 나라는 체제가 붕괴되는 과정을 겪었다. 북한으로선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일단 점진적 개혁을 원할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은 북한의 급진적 개혁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점진적 개혁은 농업국가에서나 가능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미 농업보다 공업에 우선 순위를 두고 있어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다. 조한범 연구위원은 "공업화가 어느 정도 진행된 나라에서는 체제 전환을 국가에서 통제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이재광 경제연구소 기자

im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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