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선 사과 받아냈는데 우리 정부는 뭐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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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이 17일 북·일 정상회담에서 납치 일본인 문제를 인정하고 사과함에 따라 국내의 납북자 단체들도 정부에 대책마련을 촉구하고 나서는 등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와 함께 1987년 대한항공 858기 폭파사건과 83년 미얀마에서 발생한 아웅산 테러 등 북한의 도발에 대한 사과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대한항공기 사건의 경우 폭파범 김현희(일본명 마유미)에게 일본어를 가르친 일본여성 다구치 야에코(田口八重子·한국명 이은혜)의 납북과 사망 사실을 북한이 확인함으로써 858기 폭파를 사실상 인정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남북한은 6·25전쟁 중 포로가 된 1만9천여명의 국군과 7천여명에 이르는 전쟁 중 납북자,그리고 휴전 이후 납북돼 억류된 4백86명에 대해 뚜렷한 해법을 찾지 못해왔다.

2000년 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 당국간 회담 등에서 한번도 이 문제가 공식 의제로 거론된 적은 없다.

납북자 문제를 '넓은 의미의 이산가족'에 포함시켜 해결하겠다거나 납북자·국군포로를 '본의 아니게 북측지역에 남게 된 사람들'이라고 규정하는 등 조심스런 행보를 보였다. 이 때문에 정부가 남북관계의 진전에 매달리다 보니 납북자나 과거사 해결에 미온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지난 4월 방북한 임동원 특사에게 "납치 일본인은 없으며 실종자라면 알아볼 수 있다"던 金국방위원장이 일본 총리에게는 "일부 망동주의자의 영웅주의적 행동"이라며 태도를 바꾼 데서 북측이 우리 정부를 얼마나 무르게 대하는지가 그대로 드러난다.

정부 당국자는 18일 "북·일 정상회담과 관련,우리측 납북자 문제에 대해 정부가 특별히 입장을 정리한 것은 없지만 북한에 거론할 수 있는 여건이 나아진 건 사실"이라며 "대한항공기 테러문제 등은 전반적인 남북관계의 개선과정에서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게 정부 입장"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임채정(林采正) 정책위 의장은 "북한의 사실 인정과 사과가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남북간의 앙금을 풀기 위해서는 대화가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북한이 납치문제를 시인한 것은 물론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까지 한 마당에 우리가 침묵할 이유가 없다"며 적극적인 대응을 정부에 주문했다.

납북자가족협의회 최우영 회장은 "일본은 자국민의 납치문제를 당국차원에서 집요하게 제기해 결국 사과를 받고 송환의 길을 열었다"면서 "우리 정부도 적극적인 자세로 나서 무엇이 진정한 화해·협력인지 납북자가족도 실감하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이영종·나현철 기자

yj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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