氣살아 새벽마다 '道닦는 사장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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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62면

새벽 4시. 허영호(LG이노텍) 사장은 짧은 잠을 몰아내고 갈옷(천연 감물을 들인 개량한복)으로 갈아입는다. 목을 돌리고, 가볍게 쥔 주먹으로 온 몸의 근육을 두드려 아직도 덜 깬 몸을 깨운다. 2~3분간의 명상. 이 짧은 시간동안 그가 늘 꺼내는 명상의 화두는 '감사'다. 그리고 그는 학이 되고, 곰이 되고, 원숭이와 호랑이도 된다.

許사장이 새벽마다 벌이는 이 기이한 행동은 동물의 형상을 흉내내고 항아리 옮기기와 같은 생활 속의 동작을 응용한 선(仙)체조인 토속 기공이다. 특히 현장경영을 하느라 한 주의 절반 이상을 가족과 떨어져 광주시에 있는 공장에서 지내는 許사장에게 토속기공 수련은 적막한 새벽을 활기차게 여는 비기(?技)이기도 하다.

그가 토속기공을 처음 접한 것은 1997년 회사 수련회에서. 그러나 당시에는 외환위기를 전후로 어수선한 분위기때문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다시 접한 것은 2000년 초, '아픈만큼 성숙해지고'랄까. 그는 어려운 고비를 넘어서 다시 접한 선체조에 완전히 매료됐다.

"명상을 하면서 존재 자체 만으로 감사해야 할 대상이 너무 많다는 걸 느꼈어요. 우리의 고객·회사·부품공급업체·종업원·가족까지 모든 감사의 대상들이 주마등처럼 머리 속을 스쳐가며 정신이 번쩍났습니다."

인터뷰 도중 許사장은 벌떡 일어나 양팔을 벌리고 한쪽 다리를 올린 '학의 자세'를 하고 눈을 감고 한참동안 꼿꼿이 서있었다.

"도인이 되려는 게 아니라 이런 집중력을 유지하고 싶다"는 게 許사장이 새벽마다 '갈옷 도인'이 되는 이유라고 했다.

양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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