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미당문학상]이렇게 뽑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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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한편의 작품을 골라내는 일의 고충과 어려움을 얘기하는 것으로 우리들의 토론은 시작되었다. 시적 수월성에 대한 개념과 취향이 얼마쯤 다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그 가운데서 한 편을 골라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상을 명실상부한 작품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가 재삼 강조되었고 그런 맥락에서 연공이나 지금까지의 업적은 일단 모두 괄호에 집어넣고 보자는 점에서 우리는 생각을 같이했다. 그렇지만 하나의 작품이 필경은 시인의 작품세계의 한 징표요 징후일 수밖에 없는 이상 한 작품을 억지로 떼내어 고려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리기도 어려웠다.

그런 가운데서 우리는 투표로 세분의 시인을 추천해 그 중 다수표 획득 시인으로 논의 대상을 축소했다. 얼추 고른 성과를 보여주고 있는 이들 시인의 작품 중에서 괄목할 만큼 솟아있는 작품을 찾기 어렵다는 점에서도 대체로 의견을 같이했다. 그런 가운데 다시 우리는 논의를 거듭한 후 투표를 통해 이의없이 통일된 의견으로 황동규씨의 '탁족'을 올해의 수상작으로 결정했다.

일상에서 얼마쯤 떨어진 낱말을 표제로 한 이 작품은 나그네길에서의 휴식 한때를 다룬 이 시인 특유의 여행 시편이다. 작품은 세상과의 두절을 다루면서 문명개화된 우리의 일상이 우리를 얼마나 피곤하게 구속하고 있는가를 상기시켜 준다.

벽지에서 독한 모기에게 물린 자국을 얘기하는 끝자락에서 시인은 의외의 반전과 함께 생소한 경험을 보여준다. 사회적 소음에서 가장 먼 지점에서도 은은히 계속되는 세속과의 연결 고리가 끊어지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에 우리는 홀연 인간조건의 한 모서리에 온몸을 열게 된다.

시인의 연공이나 전력은 괄호 속에 집어넣고 골라보자는 당초의 의도에 충직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연공이 현저한 시인의 작품이 수상작으로 결정된 셈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것은 솜씨의 지속적 연마를 필수로 하는 예술세계에서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또 오랜 세원 한길에 정진했다는 것이 비행(非行)이 아닌 이상 경하해야 마땅한 일이다.

이렇게 말해보는 한편으로 혹 본상이 연공 숭상의 작품상으로 비쳐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기우(杞憂)에서 우리가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도 사실이다. 적공(積功)의 시인들이 두명이나 장외로 밀려가는 내년 제3회부터는 사정이 크게 달라지기를 기대하며 또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고 전망하게 된다.

대체적으로 다작주의가 작금의 시단 풍조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지만 압축과 밀도가 요구되는 짤막한 서정시에서 견고성과 다작주의는 양립되기 어렵다고 생각된다. 젊은 시인들의 성찰과 분발을 기대한다.

◇심사위원=이어령·유종호·정현종·홍기삼·김주연(대표집필:유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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