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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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차이코프스키 음악원은 루빈슈타인 형제와 연관이 깊다. 이 학교의 초대 교장은 니콜라이 루빈슈타인으로 피아노의 황제 소리를 듣던 안톤 루빈슈타인의 동생이다. 그는 형 안톤이 1862년 러시아 최초의 음악원인 페테르부르크 음악원 교장이 되자, 1866년 모스크바 음악원을 설립해 초대 교장이 됐다. 차이코프스키 음악원 연주홀 중앙에 루빈슈타인의 얼굴이 부조(浮彫)돼 있는 이유다.

차이코프스키가 이곳에서 화성학(和聲學)을 가르친 것을 시발로 러시아를 대표하는 음악인들은 모두 한번 정도는 차이코프스키 음악원에서 수학하거나 강단에 섰다.

작곡가 아람 하차투랸·카발레프스키, 피아노의 오보린, 첼로의 로스트로포비치, 바이올린의 하이페츠·오이스트라흐 등 당대를 대표하는 대가들은 모두 차이코프스키에서 수학한 후 거장이 됐고 다시 이곳을 찾아 후배들과 교류했다.

소련과의 수교 후 한국의 음악도들도 차이코프스키 음악원을 두드렸다. 이들 중에 임동혁이 있다. 그의 아버지는 '평생 피아노를 치고 싶다'는 아들의 말을 듣고 한국의 비싼 레슨 비용에 고민하다 모스크바를 택했다고 한다.

임동혁은 모스크바에서 가브릴로프·부닌 등을 길러낸 명교수 레프 나우모프를 만나는 행운을 누렸다. 나우모프는 그가 차이코프스키를 빛낼 '미래의 거장'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그도 몇번의 눈물을 흘렸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2000년 이탈리아 부조니 국제콩쿠르에서 심사위원의 편견으로 1,2위 없는 5위에 입상한 때다. 그는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 눈물은 몇시간 후 감격의 눈물로 바뀌었다. 예선 때부터 두각을 나타냈던 그의 솜씨를 인정한 이탈리아의 음악 팬들과 언론이 반발하고 나섰기 때문이었다. 이 사건은 그해 이탈리아 음악계의 가장 큰 스캔들로 비화했다.

'피아노의 여제'라 불리는 마르타 아르헤리치는 이 사건 후 임동혁 후원을 자청하고 나섰고 2001년 말 그는 롱-티보 국제콩쿠르 사상 최연소 1위와 프랑스 작곡가 해석상 등 5개 상을 휩쓸어 보기좋게 복수했다.

지난 7일 서울 강남의 한 공연장에선 그의 한국 데뷔 연주회가 열렸다. 공연 후엔 그의 사인을 받으려는 줄이 1백m 이상 늘어섰다. 부조니의 텃세뿐 아니라 한국 음악계 주변의 텃세에 밀려 자칫 재능이 죽을 뻔했던 임동혁에게 이제 한국의 클래식 팬들도 힘을 보태주기 시작한 것이다.

김석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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