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과 5만원부터 250만원대까지 갈비·굴비 못잖은 인기선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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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61면

12일 오후 서울 롯데백화점 본점 지하 1층 한과 매장.

주부 김성지(45·서울 마포구 서교동)씨는 "와, 예쁘게 나왔네"라며 다가섰다가 질린 표정으로 발길을 돌렸다. 김씨의 눈에 든 한과세트의 가격은 무려 2백50만원.

김씨는 "10만원 정도 생각하고 왔는데 맘에 들었다 하면 20만원을 넘어 정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명절 선물로 인기가 되살아난 한과가 고급화·고가화하고 있다. 갈비·굴비에 비해 싼 선물로 통했지만 올 추석 때는 20만원대 이상의 고가 세트가 크게 늘었다.

백화점 관계자는 "작황이 안좋아 가격이 오른 청과 대신 한과를 찾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고급스러워진 한과=롯데백화점은 추석용 한과세트의 포장을 대부분 고급스러운 재질로 바꿨다. 종이나 대나무로 만든 용기에 주로 담던 것을 이번에는 한지로 만든 용기나 목기를 많이 썼다.

특히 롯데는 경회루란 업체를 통해 전통 옻칠공예의 대가인 청목 김환경씨가 만든 공예함에 담은 한과(1백20만원)를 선보였다. 전통음식 요리가 황혜성씨가 설립한 지화자란 업체를 통해 출시한 2백50만원짜리 한과세트는 전통공예가 정수화씨가 전통 옻칠과 나전기법을 활용해 만든 구절판에 한과를 담은 것이다.

용기가 고급스러워지면서 한과세트 가격도 덩달아 올라갔다. 고급품으로 분류하는 20만원 이상의 비중이 10%에서 올해는 15%로 높아졌다. 현대는 30만원대, 신세계는 40만원대 한과세트를 내놓는 등 고가 경쟁이 치열하다.

롯데의 경우 10일부터 한과세트가 본격적으로 매장에 나왔는데, 20만원대 이상인 제품의 비중이 20%에서 30%로 커졌다.

신세계백화점 매입팀 이성동 과장은 "지난해까지는 5만~8만원짜리가 잘 팔렸는데 올해는 8만~10만원대 세트의 매출이 가장 좋다"고 말했다.

5만원 이상이면 한과를 2단 또는 3단으로 쌓았으며 웬만한 한과는 총망라돼 있다. 고가 제품은 홍삼이나 인삼을 가공해 넣은 경우가 많다.

한과세트가 추석선물로 인기를 끌자 백화점들도 매출 목표를 지난해보다 20% 이상 높여 잡았다.

롯데는 지난해 18억원어치의 한과세트를 팔았는데 올해는 30% 늘어난 24억원어치를 팔 것으로 낙관했다.현대는 지난해보다 25% 늘어난 16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전체 한과시장도 크게 성장=1993년만 해도 50억원에 불과했던 한과 시장이 올해는 5백억원 규모로 커질 것으로 업계에서는 추산했다. 한과를 전문으로 만드는 업체가 크게 는 것도 한몫한다.

한과 제조업체로는 처음으로 농림부에서 전통음식 품질인증을 받은 합천전통한과의 김상근 사장은 "한과 제조는 93년 가공식품 육성 및 품질관리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기 전까지는 어느 법에서도 언급이 없어 모두 무허가였다"며 "법이 만들어진 뒤 제조업체들이 늘기 시작해 현재 2백여 업체가 각자 브랜드로 경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과 매출의 70%는 명절 때 오른다. 설이 가장 큰 대목이지만 가정에서 만드는 경우가 많아 추석 때가 오히려 30% 정도 더 많이 팔린다. 요즘에는 회갑·생일 선물로도 많이 찾는다.

한과는 서양과자에 대응해 붙여진 이름으로 유밀과·유과·강정·다식·정과 등을 총칭한다. 고려·조선시대에는 제례 등의 필수품으로 사용됐지만 상품화는 10년도 안됐다.

대개 집에서 만들어 먹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90년대 초 쌀이 남아돌고 전통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한과 제조업체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전통음식연구소 윤숙자 소장은 "한과는 방부제 등 화학 성분을 넣지 않기 때문에 건강식으로도 손색이 없다"며 "아이들도 부담없이 먹을 수 있도록 모양이나 맛을 현대적으로 바꾼 제품도 많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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