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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하는 문화가 가치있는 문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7면

'끼리끼리'는 정치판에만 있는 풍속이 아니다. 문화판의 이분법 역시 오랜 관습이다.

누군가 등급을 나누어 놓았고 사람들은 그걸 정답인 양 방치한다. 고급과 저급. 국적은 같지만 그들은 서로 다른 나라에 산다.

한쪽은 인기를 먹고 살고 한쪽은 인격을 품고 사는 사람들인가.

도대체 격조나 품위라는 것들의 기준은 무언가. 좋은 작품이란 모름지기 당대의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그 힘이 오래 살아남아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감동과 여운을 남기는 것이다. 즐거움이 나쁜가.

십몇년 전 방송에서 영상음악 캠페인이라는 걸 시도한 적이 있다.

그 캠페인의 제목이 '같이 사는 사회'였다. 그 주제곡의 끝자락에 이런 말이 있다. "같이 사는 사회 가치 있는 사회." 다르다고 생각하면 자꾸만 멀어진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부른 '사계'는 대표적인 운동권 노래였는데 요즘 그 노래가 댄스음악으로 바뀌었다.

거북이라는 그룹이 부른 '사계'는 가요순위 프로그램에도 등장했다. 이 노래의 순정함을 믿는 이들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이 거룩한 노래를 생각 없이 춤이나 추는 너희 따위가 제멋대로 비틀어서 부르다니.

과민 반응이다. 그들의 생각을 물어나 보았는가. 그 노래 역시 다같이 행복해지는 세상을 꿈꾼 것이다.

가수마다 창법이 다르듯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하게 사는 법을 존중하자. 잘 먹고 잘 사는 법은 정해져 있는 게 아니다. 남을 괴롭히며 사는 게 목적이 아니라면 그냥 그들 식으로 놀게(?) 놔두자.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을 건 가라앉고 떠오를 건 뜨게 되어 있다.

이른바 '열린 음악회'가 처음 표방한 정신의 결실을 나는 문화계의 탄소동화작용, 즉 광합성(光合成)이라고 본다.

동화작용은 뿌리를 버리고 새로운 성분을 섭취하는 게 아니라 자연의 특성(햇빛과 수분)을 잘 흡수하여 싱싱한 엽록체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런 건강한 만남의 정신과 실천이 혼탁한 세상을 청정하게 하리라 믿는다.

이번 가을 문화의 거리 명동의 한 공연장에서는 금요일마다 색다른 만남이 이루어지고 있다.

활자를 통해 이름을 얻은 사람들과 영상과 소리를 통해 이름을 얻은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무슨 일을 꾸민다고 한다. 괴짜(가짜가 아니다) 시인 김정환이 기획한 공연으로 신경림 시인과 가수 한영애가 지난 주 첫 테이프를 끊었다.

소설가 박완서와 전인권, 박범신과 크라잉넛, 김지하와 조용필도 한 무대에 선다. 문화계로선 남북화해의 자리만큼이나 뜻깊은 공간이다.

한때 조용필의 히트곡 '못 찾겠다 꾀꼬리'의 작사자가 김지하라는 소문이 있었다.

옥살이까지 한 운동권 시인과 세속적인 대중가수가 하나의 노래로 엮인다는 게 신기하고 의아했다.

바로 그 두 사람이 이번 가을 한 무대에서 노래하고 시를 읽고 대화를 한다니 차제에 만나서 그때의 미스터리를 풀어야겠다.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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