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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해외 칼럼

기성세대가 양보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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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탈리아가 대표적이다. 이탈리아에선 높은 청년실업률로 고도로 숙련된 젊은 노동자들이 소외되고 있다. 청년층의 경제·정치체제 진입이 어려운 이탈리아는 이른바 ‘장로제 사회’(정치·경제적 실권을 노년층이 장악한 사회)의 특징을 보인다. 이탈리아 루이스 대학 연구에 따르면 이탈리아의 최상위 경제·정치 지도자의 절반은 60대 이상이다. 이탈리아 통계청은 18~34세 청년층의 60%가 자립능력이 없어 부모와 함께 산다는 통계를 내놨다. 같은 연령대 청년 200만 명은 이른바 니트족(NEET: 구직 의지가 없는 청년 무직자)이다.

지난 30년 동안 고령화의 덫에 빠진 이탈리아에선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의 진출을 막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켜왔다. 청년층은 기성세대들의 이익과 사회적 안정을 위해 희생됐을 뿐이다. 거기다 앞으론 많은 공공부채를 짊어져야 한다.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현재의 사회 시스템은 끝이다. 높은 부채비율로 복지혜택은 줄고 차기 정부의 활동 폭은 제한될 것이다. 질 낮은 교육·사회제도는 젊은 층에 불안감을 줄 것이다. 미래세대는 생산능력이 떨어진 기성세대의 삶을 짊어지며 힘든 삶을 살아야 한다.

이 같은 고령화 문제는 정치가들이 세대별 세금·수당에 대한 구조개혁에 나서면 해결이 가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면 세대 간 충돌에 직면할 것이다. 미국 경제학자 앨버트 허시먼이 내놓은 ‘이탈, 항의 그리고 충성’이란 논문에 따르면 조직이나 국가 체제의 질이 낮아질 때 구성원들은 세 가지 반응을 보인다. 조직을 떠나거나(이탈), 조직에 남아 문제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거나(항의), 조직에 남지만 아무런 비판 없이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기만을 바란다(충성). 현재 이탈리아엔 이탈과 충성만이 가득하다. 이탈은 인재의 해외유출과 투표율 저하로 나타나고 있다. 다른 유럽국가에 비해 언론 자유도가 낮은 이탈리아는 구성원 다수가 기존 체제에 무비판적이라 충성의 경향이 강하다. 이런 이유로 이탈리아의 고령화 문제는 국민적 의제가 되지 않고 있다.

모든 국민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했을 땐 너무 늦다. 그때는 사회 시스템이 붕괴되고 세대 간 충돌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세대 간 충돌이 발생해도 민주적 절차를 통해 기성세대의 복지수당을 대폭 삭감하면 평화적 해결은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지 못하면 젊은 층이 과격 폭동을 일으킬 수 있다. 불행히도 인구구성을 보면 후자의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인구분포상 소수인 청년층이 민주적 절차로 힘을 갖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체계적인 가족정책을 수립하고 젊은 외국인 이민자를 받는 방법 등을 통해 정치·경제적 기득권을 청년층에 넘겨줘야 한다. 이제 기성세대가 지혜롭게 행동할 때다.

에두아르도 캄파넬라 전 세계무역기구(WTO) 경제연구원
정리=이승호 기자 ⓒProject Syndic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