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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88" … 99세까지 팔팔하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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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연말 모임에서 건배사는 다양했다. "위하여!"는 무엇을 위하는 것인지 구체적이지 않더라도 늘 좋았다. "99-88"도 인기였다. 99세까지 '팔팔하게'살자는 뜻이라서, 한번 들으면 잊혀지지 않는다. 무리라면서 고개를 젓는 사람도 있었고, 그렇게 오래까지 살아야 하느냐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체로 기분 좋은 건배사였다. 그런데 자칫 "88-99"라고 하면 '88세까지 구질구질하게' 산다는 뜻이 되니까 조심해야 된단다. 건강하게, 오래, 행복하게 사는 것은 모든 사람의 소망이겠다.

평균수명이 점점 길어지니 산 날보다 앞으로 살 날에 대한 희망과 설렘도 그만큼 커진다. 서로 행복을 기원하는 신년 덕담도 다양했다. 네티즌이 뽑은 인기 덕담 중에는 '올해도 잘 묻어갑시다' '담배 뚝 술 뚝' '우선 솔로 탈출' 등이 있었다. 복 많이 받고 부자 되시라는 덕담도 항상 좋지만 21세기 버전으로 깜찍하고 기발한 덕담이 인기다.

언젠가 받은 어느 회사의 카드에는 한 살부터 100세에 이르기까지 나이에 따라 한 살, 한 살을 재미있게 설명해 놓았다. 한 살이란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태어나고, 누구나 비슷하게 생긴 나이란다. 나이 세 살에 정약용은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리니, 멀고 가까움이 다르기 때문일세'라는 시를 지었단다. 그런데 보통 나이 세 살은 간단한 의사소통을 하는 나이다.

21세에 스티브 잡스는 애플 컴퓨터를 설립했고, 보통 나이 21세는 사과 같은 얼굴을 갖기 위해 변장을 시작한다. 35세에 퀴리 부인은 남편과 함께 노벨상을 받았고, 보통 나이 35세는 이제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엄청나게 느끼게 된다. 36세에 스티븐 스필버그는 ET를 만들었지만, 보통 나이 36세는 절대로 ET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다. 44세에 원효대사는 해골에 괸 물을 마시고 도를 깨달았지만, 보통 나이 44세는 약수터의 약수도 믿지 못하는 나이다. 47세에 이순신 장군은 옥포에서 승리를 거두었는데, 보통 나이 47세에는 싸울 일이 있으면 피하고 본다.

54세에 디즈니는 디즈니 왕국을 만들었는데, 보통은 꿈의 왕국을 꿈속에서나 보게 된다. 59세에 왕건은 후삼국을 통일했지만, 보통 나이 59세는 성골.진골이 아니면 아무 일도 안 된다고 생각한단다. 68세에 갈릴레이는 천동설을 뒤집어 지동설을 주장했지만, 보통 나이 68세에는 생각을 뒤집으면 민망해진다. 71세에 코코 샤넬은 파리에 가게를 열고 다시 복귀했는데, 보통은 스스로 전설을 쓰기 시작하는 나이다. 91세에 샤갈은 마지막 작품을 완성했지만, 보통 나이 91세는 나이 자체가 작품이 된다. 93세에 피터 드러커는 경영학의 기둥을 세웠다지만, 보통은 한국말도 통역이 필요해지는 나이가 된다.

참으로 깜찍한 인생 분석이 아닐 수 없다. 인생 나이 한 살에서 100세까지 중 어디에 서 있는지,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거리는 얼마나 되는지를 다시 한번 되짚어 보게 되는 때가 새해다. 오래 오래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몰입할 대상과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 사람 사는 인생에 봄.여름.가을.겨울의 계절은 다 있게 마련이다. 누구에게는 혹독한 겨울이 먼저 오고 나서 봄이 온다. 어떤 이는 좋은 계절에서 시작했다가 나중에 힘든 세월을 맞기도 한다. 변화하는 세상, 변하는 사람, 변하는 인생, 그 어디쯤 다들 건강하고 행복하게 서 있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다. 건강 100세를 기원합니다.

강미은 숙명여대 교수·방송정보학

◆약력=▶연세대 영문학과▶미국 오하이오 주립대 저널리즘 석사▶미국 미시간대 커뮤니케이션 박사, 사회조사연구소 연구원▶미국 클리블랜드 주립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저서 '通하고 싶은가?-성공하는 사람들의 커뮤니케이션 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