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후보와 대법관 함께 지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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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영국신사'.

40여년을 판사로 지낸 신임 김석수 총리서리를 겪어본 사람들이 그에게 붙이는 수식어다. 법관으로서 후배들의 존경을 받고 합리적인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이다.

그는 10일 임명장을 받은 직후 기자들과 만나 "나는 흠이 많은 사람이다" "아들이 군대 안 간 문제가 걸린다" "변호사 개업하면 돈을 만지게 된다. 그래서 재산은 늘었을 것이다"라고 털어놨다.

특히 아들 문제는 "(총리서리를)거절했던 이유 중 하나"라고 밝혔다.

金서리는 "고등학교를 자퇴한 아들이 검정고시를 거쳐 육사를 지원했다가 낙방했다. 대학 재학시절 군 입대를 권했지만 신체검사에서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또 "큰 아들은 질병 때문에 병역을 면제받았는데 공연히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을까 우려돼 고사했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金총리서리는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지냈으며 대법원공직자윤리위·한국신문윤리위·정부공직자윤리위 등 세 곳의 윤리위원장을 거쳤다. 그는 1991년 대법관으로 임명될 당시 국회에서 역대 최고득표를 했다.

법조계나 중앙선관위 관계자들은 金총리서리의 업무스타일에 대해 "스케일이 크다. 지엽말단적인 것은 지시하지 않고 방향만 정해준 뒤 일을 맡긴다"고 전한다.

대법관 재직시 각종 판결은 상식적·보수적이었다는 평가다. 주연 여배우가 알몸으로 출연해 외설논란을 일으킨 연극 '미란다'의 연출자에게 "음란성이 인정된다"며 유죄를 선고(96년)했고, 남편의 성기능 장애를 이유로 이혼소송을 낸 20대 부인에게 "부부가 합심해 전문의의 치료와 조력을 받는다면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할 수 있다"고 판결(93년)했다.

金총리서리는 이한동(李漢東)전 총리와 고시 동기생(10회)이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8회)후보와는 대법관 생활을 함께 했다. 그는 "李후보를 잘 알고 있으며 존경한다"고 말했다.

그는 선관위원장 시절이던 96년 3월 당시 국민회의 총재였던 김대중 대통령에게 경고성 친필서한을 보낸 적이 있다. 당시는 15대 국회 구성을 위한 4·11총선 직전으로, 金총재가 시국강연을 하려 하자 자제를 요청한 것이다.

95년엔 기자회견에서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지역개발 공약이 공명선거 분위기를 해친다"며 자제를 요청했다가 뒤늦게 번복하는 바람에 정쟁에 휘말리기도 했다.

당시 야당인 민주당의 박지원 대변인(현 청와대 비서실장)은 "선관위의 고유 권한에 대해 여당인 민자당이 압력을 행사했다"고 비난했었다.

송상훈·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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