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法의 어처구니없는 실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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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대법원이 최근 법정 한도를 초과하는 부동산 중개수수료는 돌려줘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이 판결은 종전과 전혀 상반된 판결인 데도 대법원이 법원조직법에 명시된 전원합의체에 의한 판례 변경 절차를 무시한 것은 잘못이다. 담당 재판부가 종전 판례가 있는 줄 모르는 바람에 이같은 일이 일어났다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다.

부동산 중개수수료 과다 공방은 주변에서 흔히 있는 시비다. 또 법정 중개수수료가 지나치게 낮다는 이유로 초과 지급되는 경우가 다반사인 게 현실이다. 그만큼 관련자가 많고 국민 생활에 직결된다는 점에서 판결 결과가 관심거리였다.

판결 내용도 획기적이었다.무엇보다 과다 수수료 거래 관행에 명시적으로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또 중개업자들의 반발과 지나치게 수수료를 많이 지급한 사람들의 줄소송까지 예상되고 있다.

이처럼 중요한 사건을 판결하면서 법 이론이 상반된 종전 판례를 몰랐다는 것은 이해가 안된다. 중개업자들은 이미 다 알고 있었던 "초과 수수료도 반환할 의무 없다"는 내용의 지난해 3월 대법원 판결을 정작 상고심 재판부만 모르고 있었다니 말이 되는가. 또 이번 사건 주심 대법관이 지난해 3월 판결 당시 재판장이었다니 더더욱 어이가 없다.

대법원은 어떤 경우라도 판결에 실수나 착오가 있어서는 안되는, 명예와 권위의 상징 기관이다. 대법관마다 중견 법관 3명씩을 재판연구관으로 두고 있고 20여명의 별도 재판연구관을 둔 것도 모두 이 때문이다. 대법관 한명이 판결 사건만 연 1천3백여건씩 처리해야 할 정도로 업무량이 과중한 것도 문제지만, 그렇다고 사건 처리를 이처럼 허술하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대법원의 착오는 사법부 전체의 명예와 직결된다. 다시는 이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대법원은 제도적인 개선점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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