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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동아시아 역사, 오키나와 와 보니 평화의 소중함 알겠군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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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한국의 역사를 동아시아 시각에서 보는 안목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설정아·전남 광양고 교사)

“한국사를 가르치지만, 앞으로 일본사·중국사도 많이 공부해야겠어요.”(임성화·대구 운암고 교사)

“오키나와를 새롭게 보는 계기였고, 평화교육의 의미도 실감했습니다.”(문현숙·부천 소사고 교사)

동아시아사 현장연수에 참여한 교사들은 “많은 것을 느꼈고, 큰 짐을 안고 간다”고 입을 모았다. 21일부터 25일까지 일본 오키나와현에서 열린 ‘제1회 동아시아사 교원 현장연수’에서다.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정재정)이 역사갈등이 주요 현안인 동아시아에서 교사들이 교육을 통해 평화의 징검다리를 놓아보자고 마련한 자리다. 2012년 고교 선택과목으로 개설되는 동아시아사 교사 양성 프로그램이다.

제1회 동아시아사 교원 현장연수에 참여한 교사들이 일본 오키나와현의 전쟁유적지를 찾았다.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군과 미군의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동아시아사 과목은 2012년부터 고교 선택과목으로 개설된다.

행사에는 전국 중·고교에서 선발된 교사 25명이 참여했다.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 상임공동대표 안병우(한신대 국사학) 교수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진재관 교과서평가연구실장 등 역사교육 관계자 8명을 합쳐 모두 33명이 답사단을 구성했다. 주제는 ‘류큐·오키나와에서 보는 동아시아’.

◆전쟁과 평화가 교차하는 오키나와=류큐는 오키나와의 옛 이름. 본래 독립된 왕국이었다. 1471년 신숙주가 펴낸 ‘해동제국기(海東諸國紀)’에 ‘류구국지도(琉球國之圖)’가 포함돼 있다. 중국의 명·청나라, 조선, 일본 등과 무역 교류가 진행됐던 역사가 전해진다. 오키나와로 이름이 바뀐 것은 1872년 일본 식민지가 되면서부터다. 제국주의 일본이 조선을 강제병합하기에 앞서 류큐를 먼저 식민지로 만들었다.

또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군과 미군이 직접 싸운 전쟁터가 오키나와였다. 1945년 일본의 패전 이후 미국의 영토였다가 72년 일본으로 반환됐다. 현재 주일 미군의 75%가 있다. 동아시아의 전략적 요충지인 셈이다. 후텐마 미군기지 이전을 둘러싸고 하토야마 전 일본 총리가 퇴진해야 할 정도로 현실정치의 핫 이슈가 되기도 한다.

행사를 기획한 조철수 동북아역사재단 협력팀장은 “동아시아의 일원이었으면서도 잊혀진 지역인 류큐·오키나와의 역사를 통해 동아시아의 평화를 되새겨보기 위해 첫 연수장소로 선택했다”고 밝혔다.

대부분의 참석자가 오키나와는 처음이었다. 연수는 오키나와 역사의 현장을 두루 답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류큐왕국의 정전이 있는 슈리성, 미군과 일본군 전쟁의 흔적을 간직한 아부치라동굴, 히메유리평화기념자료관, 후텐마 미군기지, 한국인 위령비, 오키나와현립박물관 등을 찾았다.

교사들은 앞으로 동아시아사를 가르칠 때 도움이 될 실마리를 찾는 모습이 역력했다. 홍옥진(경기 교하고) 교사는 “류큐라는 이름과 오키나와가 대만 옆의 섬이라는 정도만 알고 왔는데, 전쟁의 아픔을 간직한 동굴을 답사하며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통역을 맡은 허미선(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사무국장)씨는 “어떻게 잘 가르칠까 만을 고민하는 모습에 감명 받았다”며 “선생님의 관심사는 역시 학생이었다”고 말했다.

오키나와현립박물관의 연표가 눈에 확 띄었다. 한반도 역사 항목에 고조선을 표기했다. 기원전 800년대로 잡아 놓았다. 고조선의 존재를 인정했다는 의미가 적지 않다. 또 임진왜란이란 표기도 눈에 띈다. 일본식 표기인 ‘분로크·케초노에키(文祿·慶長の役)’를 괄호 안에 넣었다.

◆왜 동아시아사인가=한국·중국·일본 사이에는 역사갈등이 핵심 현안이다. 동아시아사 교과목이 신설된 배경이다. 고대사를 중국사 위주로 재편하려는 중국의 동북공정, 침략의 역사를 미화하는 일본의 교과서 왜곡 등이다. 2000년대 들어 역사갈등이 더욱 깊어갔다. 우리는 중간에서 이래저래 ‘역사 피해자’의 입장이다.

피해자이지만 오히려 평화를 주도하자는 역발상으로 만들어진 것이 동아시아사라는 교과목이다. 진재관 실장은 “동아시아 공통의 역사와 차이를 서술하면서, 궁극적으로 지역의 평화에 이바지하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동아시아사 교과서에는 고대 국가성립 과정, 유교 성리학 발전의 양상, 근대화 과정 등 모두 26개 주제를 놓고 동아시아 각국의 역사가 비교된다.

중국이나 일본에는 이런 과목이 없다. 안병우 교수는 “역사갈등이 심한 격동의 동아시아에 평화 교육의 씨앗을 뿌린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오키나와=글·사진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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