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속에도 희망은 자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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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희망은 절망 속에 존재한다. 태풍 '루사'는 사망·실종자 2백여명에 3조원 이상의 재산피해를 주었지만 우리는 그 안에서 따스한 사랑을 나누고 있다. 수마를 비켜간 '무사한 사람들'가운데 자원봉사를 하거나, 수재민 돕기 성금에 동참하는 이들을 일일이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피해가 큰 경북 김천지역의 경우 봉사활동 중인 학생·공무원·군인·회사원·봉사단체 회원만도 9천여명을 헤아린다고 한다. 강릉에도 전국 각지에서 3천여명의 자원봉사자가 몰려들고 있다. 육군은 군사작전 차원의 대대적인 복구 지원활동을 하고 있고 삼성·LG 등 대기업들과 서울시 등 지자체들의 수해지역 돕기도 활발하다. 고통 속에서도 지하수를 나눠먹거나 보관한 쌀을 내놓아 떡을 만들어 함께 끼니를 해결하는 수재민들도 있다. 참으로 가슴 뜨거운 동포애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절망의 땅에 말없이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이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면서 특히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수재민 구호작업을 벌인 의인들의 값진 희생을 기리고자 한다.

폭우에 고립된 노인 2명을 구하러 물에 뛰어들었다가 숨진 육군 철벽비룡부대 김영곤 대위, 관할지역의 피해 정도를 확인하러 나섰다가 끝내 주검으로 돌아온 경북 영천시 대창면사무소 김진우씨,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대진리의 수해복구 지원에 나섰다가 지뢰폭발로 양팔이 잘린 육군 뇌종부대 김일동 중위는 책임·의무와 인간애의 결합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보여주었다.

우리는 지금 하늘이 내린 재앙도 서로 도움으로써 극복할 수 있음을 체감하고 있다. 절망은 어느 순간이든 찾아온다. 절망 앞에 무릎을 꿇을 것인지, 절망을 딛고 일어설 것인지는 그 안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 엄청난 재난 속에 망연자실한 수재민들에게 이들이 보여준 고귀한 사랑이야말로 무엇보다 튼실한 희망의 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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