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한테 야단맞은 부총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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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전국 곳곳에서 태풍 '루사'가 남긴 상흔(傷痕)을 지우려는 노력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김천시의 경우 대덕·증산면 등 아직 고립 상태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곳도 있지만 최악의 침수피해를 보았던 황금동 일대에 4일부터 전기와 수돗물이 공급되면서 식당들이 문을 여는 등 빠르게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하지만 주민들의 허탈감과 분노는 오히려 커지고 있다.

헐린 집을 고치고 냉장고와 옷가지도 새로 장만해야 하는 등 맨손으로 다시 일어서야 할 판인데 정부의 대응이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진 데다 생색내기에 치우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일 전윤철(田允喆)부총리 일행의 김천시청 방문 당시 빚어졌던 해프닝은 '김천 피해가 중앙정부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특별재해지역에서 제외된다더라'는 소문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날의 해프닝은 田부총리 일행이 박팔용(朴八用)시장의 건의를 제대로 듣지 않은 채 "바쁘다"며 자리를 뜨려다 시장에게서 거센 항의를 받으며 시작됐다. 부총리 일행 중 한명이 "그래도 강릉보다 덜한 편 아니냐"는 말까지 하게 되자 朴시장은 "현장을 가보고 얘기하라. 그렇다면 뭐하러 왔느냐"며 고성을 터뜨리기까지 했다.

시공무원들도 "최근 며칠간 헬기를 보유한 수십 곳에 지원 요청을 했지만 '안된다'는 말밖에 없었다"며 "정부가 우선순위를 제대로 정하지 못한 것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곳에 헬기 6대가 배치돼 생필품 수송 지원을 시작한 것은 재해발생 나흘 만인 지난 3일이었다.

아직도 일부 면지역은 전기·통신이 두절돼 있고 사방의 도로가 끊겨 갇혀 있는 형편이다. 주민들은 "정부에서 현장도 둘러보지 않는데 어떻게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오겠느냐"며 답답해하고 있다.

김천시 황금동에서 상점을 운영하는 한 시민은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야지, 정부가 무슨 대책을 내놓겠소. 정부는 현실을 보려하지 않고 정치판은 싸움이나 하는데…"라며 말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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