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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식구가 라면 4개로 한끼 때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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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7번 국도가 임시 개통돼 강원도 동해시가 외부와 연결된 3일 오전부터 동해시 삼화동 망가진 철길 위로 피난길 같은 행렬이 이어졌다. 이들은 생수와 라면·휴대용 가스레인지·화장지 등 각종 생활필수품을 손에 들거나 지고 이고 20여리를 걸어야 했다.

이들 대부분은 졸지에 삶의 터진을 잃은 동해시 삼화동과 삼흥동 지역 주민이었다. 삼화초등학교 등 대피소에서 갈증과 공포 속에 밤을 지새운 뒤 새벽같이 북삼동·천곡동 등 시내 상가로 나와 생필품을 사가지고 돌아가는 길이다. 이들 중에는 이 지역에 사는 친척과 가족들의 안부를 확인하려는 외지인들도 적잖이 끼여 있었다.

라면 한 상자를 걸머지고 30여분을 걸어 아랫동서인 임덕순(43·삼화동)씨 집을 찾은 김길수(51·동해시 천곡동)씨는 "살아 있어 안심은 됐지만 어디부터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3일 오전 1시30분 어머니와 부인이 대피 중인 삼화초등학교 교실을 찾은 김남형(38)씨는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가 30여명의 주민과 함께 먼지 쌓인 교실 바닥에서 쪼그리고 잠을 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해시에 따르면 金씨의 어머니 이영악(63)씨처럼 집이 부서지거나 침수돼 대피소에서 생활하는 삼화동 주민은 4천여명이나 된다.

삼화초등학교에서 사흘째 생활하고 있는 5백여명의 이재민은 물 공급 부족으로 화장실 악취에 시달리고 있다.도로가 복구된 3일 오후부터 사정이 다소 나아졌지만 라면 네개로 8명의 식구가 한끼를 해결하는 등 먹을 것이 턱없이 부족한 것도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20여채의 가옥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거나 흙 속에 묻히는 등 온 마을이 폭격을 맞은 것 같은 삼흥동에서는 주민 김윤녀(65)씨가 복구에 여념이 없는 20여명의 이웃에게 밥을 지어 제공하는 등 주민들끼리 어려움을 이겨내고 있었다.

동해=이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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