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표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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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간바레(파이팅) ! 간바레 !…."

지난 5월 24일 0시50분 일본 후쿠오카(福岡) 국제선 입국장에 난데없는 연호가 터져나왔다. '불굴의 사자들(Indomitable Lions)'이라 불리던 카메룬 월드컵 대표팀을 맞이하는 6백여 일본 축구팬의 환성이었다.

카메룬의 사자들은 환성을 받을 만했다. 그들은 월드컵 참가 수당을 둘러싼 시비로 출발을 하지 못해 예정된 날을 닷새나 넘겨 도착했다. 그나마 전용기가 낡고 작아 프랑스에서 일본까지 오는 사이에 두차례나 급유를 해야했으며, 베트남과 캄보디아 영공 통과를 미리 허가받지 않아 방콕에 긴급착륙하기도 했다. 독일팀이 10시간 만에 온 거리를 무려 40시간의 우여곡절 끝에 날아왔으니, 지켜보는 팬들의 기다림이야 오죽했겠는가.

새벽까지 기다린 인파의 대부분은 음보마(Patric Mmboma·32)의 팬이었다. 일본은 음보마에게 제3의 조국인 탓이다. 음보마의 첫번째 조국은 그가 태어난 아프리카의 카메룬. 두번째 고향은 부모를 따라 두살 때 옮겨가 자란 프랑스다. 음보마는 두 나라의 국적을 지니고 있다.

일본이 제3의 조국인 것은 축구선수로서 세계적 주목을 받게 된 계기가 일본 J-리그 진출이었기 때문이다. 두번째 조국에서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던 그는 1997년 감바 오사카에서 뛰면서 펄펄 날았다. 동물적인 감각과 고무공 같은 순발력으로 '흑표범'이란 별명을 얻으며 2년 연속 득점왕에 올랐다. 나카다 히데토시(中田英壽) 같은 선수는 "저런 친구를 출전시키는 것은 반칙"이라는 항의( ? )로 찬사를 대신했을 정도다. 음보마는 일본에 머무르는 동안 일본말을 배워 팬들과 일본말로 인사를 하며 몇시간씩 사인을 해주는 서비스 정신으로 더 인기를 모았다. 그는 생선회와 초밥을 즐겼으며, 중고 축구화와 유니폼을 수집해 카메룬의 축구 꿈나무들에게 나눠주기를 취미로 삼았다고 한다.

일본에서 화려한 축구인생의 문을 연 그는 다시 유럽으로 진출했으며, 2000년엔 카메룬 대표팀을 이끌며 시드니 올림픽에서 우승해 카메룬의 축구 영웅이 됐다.

그가 우리나라에 온다. 국내 축구 매니지먼트사와 계약키로 합의했다고 한다. 최초의 세계정상급 용병이다. "K-리그에서 뛰고 싶다"는 흑표범이 그라운드를 초원 삼아 질주하는 모습이 기다려진다.

오병상 대중문화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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