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영희 칼럼

군비 경쟁에서 구호 경쟁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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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김영희
김영희 기자 중앙일보 고문

인간 세상에 참혹한 재앙이 일어나면 기독교의 하나님이든, 이슬람의 알라든, 불교의 부처님이든 먼저 신에게 원망이 쏟아진다. 기원전 6세기 바빌론 왕 네부카드네자르가 이스라엘을 멸망시켰을 때 사람들은 예루살렘의 폐허에 서서 하나님은 어찌하여 이 위대한 도시를 파괴하셨단 말인가라고 탄식했다(구약성서 예레미아 22/8).

1755년 27만5000명 인구의 리스본에 대지진이 일어나 9만명이 죽었을 때도 그랬다. 지진은 해일과 화재를 동반하고, 해일은 지중해 건너 북아프리카의 모로코에서도 1만명의 희생자를 냈다. 리스본은 런던.파리.나폴리에 이어 유럽 네번째의 큰 도시였다.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으로 신의 존재를 포함한 우주의 모든 신비가 설명될 수 있다고 믿는 유럽 사상계에 리스본의 재앙은 참으로 큰 충격이었다.

*** 250년 전 리스본 대지진의 교훈

유럽 사상계의 주류는 루소와 볼테르를 두 기둥으로 하는 계몽적 합리주의였다. 그들은 정확하게 돌아가는 시계가 시계공의 존재를 증명하듯 조화롭게 돌아가는 우주는 창조주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라고 믿는 이신론자(理神論者)들이기도 했다. 그들은 신이 불변의 물리적.도덕적 법칙에 따라 움직일 세계를 창조하여 이성적인 인간들에게 관리를 맡겼다고 믿었다.

리스본 대지진에 볼테르가 받은 충격은 특히 컸다. 그는 "존재하는 것은 모두 정당한가"를 묻는 시를 써서 계몽적 합리주의에 등을 돌렸다. "말해 보라/리스본의 통탄할 비극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는가." 리스본의 재앙을 보고 쓴 그의 소설 '캉디드'는 더 큰 선풍을 일으켰다. 주인공 캉디드는 유럽.중남미.아시아.중동을 주유(周遊) 하면서 세상은 그의 계몽주의 스승이 가르친 것과는 반대로 거짓말쟁이.배신자.배은망덕자.도둑.구두쇠.살인자.광신자.위선자.바보들로 가득 찼음을 본다.

동남아 지진.해일도 예외가 아니다. 영국 성공회의 캔터베리 대주교는 텔레그래프에 쓴 글에서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어떻게 이런 재앙이 일어날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그리고 인터넷에서는 기독교와 이슬람과 불교와 힌두교를 믿는 사람들과 무신론자들이 동남아 지진의 배후에 신이 있는가에 관한 토론을 벌이고 있다.

후세 사람들이 리스본 대지진에서 얻었어야 할 교훈은 루소의 냉철한 사회과학적인 접근이었다. 루소는 땅이 처음 흔들렸을 때 해안에 살던 사람들이 신속하게 대피했더라면 인명피해는 훨씬 적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옷가지와 돈을 더 가져 나오려다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루소는 지진 위험 지대에 위치한 도시는 도시계획과 주택의 모양과 건물의 높이까지 치밀하게 계획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는 마치 250년 뒤 동남아에서 반복될 실수를 예언이라도 한 것 같다. 이번 지진.해일 때 태국은 관광사업에 줄 피해를 걱정해서, 인도네시아는 시스템의 미비와 안전불감증으로 90분 이상 대피할 시간을 벌 수 있었던 해일경보를 듣지 않았다.

리스본의 교훈은 또 있다. 포르투갈 총리 폼발은 지진을 하나님이 내린 재앙으로 해석하고 복구사업을 교세 확장에 이용하려는 가톨릭 제수이트파의 압력을 뿌리치고 리스본의 복구를 국가 백년대계에 맞춰 강력하게 추진했다. 종교재판이 건재하고 제수이트파가 귀족계급과 유착해 정치를 농단하던 사회.문화적 환경에서 폼발의 비전과 용기는 귀감이 될 만했다.

*** 테러 해결할 가장 효과적 방법

재앙은 하늘의 뜻일지 몰라도 사후 수습은 인간의 몫이다. 동남아에서 벌어지는 구호경쟁은 잘된 일이다. 미국은 항공모함을, 일본은 자위대까지 보냈다. 독일과 호주도 아주 통 크게 나왔다. 구호경쟁 뒤에는 동남아 포섭을 위한 정치적 동기가 있다고 냉소할 것 없다. 동기야 어떻든 군비경쟁보다는 구호경쟁과 체계적인 빈민구제가 21세기 국제정치의 큰 과제다. 그거야말로 가장 효과적인 테러해결 방법이다. 이라크 전쟁으로 찢어진 국제사회가 지진.해일 복구로 새로운 국제적 협력 모델을 찾는다면 전화위복이다. 유엔 주도의 구호기금을 만들고, 글로벌 지진.해일 경보 체제를 갖추는 일이 중요하다. 한국도 경제규모로 봐서 적극 참여하는 것이 당연하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