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우선 정치로 복귀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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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재난의 현장을 정치권 지도부가 서둘러 찾고 있다. 한나라당·민주당 모두 추경예산안의 신속한 편성에다 국회재해특위의 가동 등 거당적인 수해대책 마련을 다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장면이 수마에 치명적 상처를 입은 국민의 허탈감과 좌절을 제대로 달래지 못하고 있다.

미움과 증오의 정치에만 골몰해온 정치권이 갑작스럽게 민생 쪽으로 전환한 것이 국민으로선 미덥지 않다. 참담한 재난을 뒷전으로 밀쳐놓다간 욕을 먹을까봐 어쩔 수 없이 물난리 현장에 나간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태풍 속에서도 법무부 장관 해임 건의안을 놓고 국회의장 공관에서 비아냥과 눈흘김을 교환했던 게 이들 정치인들이 아닌가.

그만큼 병풍(兵風)과 법무부 장관 해임안, 총리 임명동의안을 둘러싼 정치권의 끊없는 공방에 국민은 지쳐 있고 지긋지긋해한다. 거대 야당의 위세를 과시하는 데 주력하는 한나라당이나, 병풍을 대선전략에 활용하는 데 머리를 짜내는 민주당 행태가 모두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이제 정치권은 최악의 침수현장에서 적개심 짙은 정쟁에 너무 오랫동안 매달렸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수재민의 고단함과 절망이 민생에 둔감한 정치권에도 근거한다는 점을 충분히 짐작하고 자성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민생우선 정치로의 복귀에 나서야 한다.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고 아픈 가슴을 어루만지는 정치의 기본에 충실해야 할 시점이다.

무엇보다 정국 운영의 틀을 대화정치로 복원하지 않으면 지금의 수해대책 발표도 속셈 뻔한 대선전략의 방편에 불과할 것이다. 병풍과 법무부 장관 해임안 문제 등 정쟁의 일정기간 중단과 냉각기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지금 당장 한나라당·민주당 지도부가 머리를 맞대고 재난극복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의장 등원 저지에 대한 사과 문제를 놓고 대표회담을 하지 않는 것도 한심하다. 정기국회의 우선적 임무는 짜임새있는 수해대책을 초당적으로 내놓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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