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파괴되면 인간도 못사는 것을…" '지구정상회의'서 얼음펭귄 조각 화제 최병수 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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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한국에서 날아온 미술가와 그의 작품이 세계 각국을 대표하는 정상들보다 더 사람들과 언론의 관심을 모았다.

지난달 26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지구정상회의장 앞. 환경미술가 최병수(42·사진)씨가 땀을 뻘뻘 흘리며 더위에 녹아내려 사라져버리는 얼음 펭귄을 조각했다. '지구 지킴이'로 남겠다는 의지 표현으로 머리를 빡빡 밀었다는 최씨는 "펭귄은 이상 기온과 홍수 등 망가져 죽어가는 지구 환경의 상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틀 앞선 24일에는 부시 미국 대통령의 가면을 쓰고 부시가 지구의 피를 마시는 행위예술을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지구를 살리자'는 최씨의 이런 메시지는 AP통신을 타고 세계로 퍼져나가 한국의 환경보호운동을 널리 알리는 효과까지 얻고 있다.

최병수씨는 우리에게 '한열이를 살려내라'의 걸개그림 작가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1987년 노동자 출신 작가로 민중 미술판에 뛰어들었던 그는 이제 "어디든 문제가 일어나는 곳으로 달려간다"는 현장 미술가로 거듭났다. 새만금 간척사업을 막기 위해 전북 부안 해창마을에 아예 집을 얻어 개펄을 살리자는 솟대를 세웠고, 북한산 관통도로가 뚫리는 걸 막으려 20m 높이의 망루를 세우고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국내뿐이 아니다. 92년 브라질 '리우 환경회의' 때는 일회용품 사용이 얼마나 지구를 병들게 하고 있나를 보여주기 위해 쓰레기에 둘러싸인 지구를 소재로 한 걸개그림을 걸었고, 97년 교토 환경정상회담장에서는 지구 온난화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이번 작업과 비슷한 얼음 펭귄 조각을 선보였다.

"옛날 어른들은 마당에 뜨거운 물도 함부로 안 버렸어요. 지렁이들 죽는다고요. 아무리 미물이라지만 지렁이들이 흙을 뒤엎어 우리 땅과 삶을 보전해주는 그 위대함을 잊는 순간부터, 인간도 함께 죽는 겁니다. 환경을 파괴하는 사람들이 살 곳은 없습니다. 세상이 왜 이 꼴인가, 탄식하기 전에 목숨붙이들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음부터 키웠으면 좋겠습니다."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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