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상의 맛있는 나들이] 홍은동 '수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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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용어 중에 효자상품이란 말이 있다. 속 안 썩이고 가만히 놔두어도 잘 팔리는 인기제품 혹은 히트상품을 지칭한다. 우리 밥상에 오르는 먹을거리 중에도 효자음식이 있다. 그러나 효자상품과는 개념이 약간 다르다. 어른을 공경하는 효심이 담긴 음식, 즉 나이든 노인을 배려해 만든 음식이다. 대표적인 것이 떡갈비다. 귀찮을 정도로 손이 많이 가지만 이가 시원찮은 노인들에게도 '갈비 뜯는 맛'을 주기 위한 정성이다.

서울 홍은동 현대교통 차고지 부근에 위치한 '수빈(02-307-9979)'은 떡갈비 구이의 향긋한 냄새로 지나는 사람의 발길을 잡는 곳이다. 코를 벌름거리며 고개를 돌리면 하얀색 양옥집에 눈이 머문다. 낮은 돌계단을 오를 땐 아담한 카페에 들어서는 기분이다. 그러나 실내엔 따뜻한 온돌방이 기다리고 있다. 가정집을 개조해 방마다 내 집처럼 편안하다.

떡갈비 밥상이 차려지기 전에 노릇노릇한 부추전이 밥상에 먼저 오른다. 주방 사정에 따라 김치전.호박전이 등장하기도 한다. 감질나게 한 젓가락 더 먹었으면 싶을 때 바닥이 드러난다. 다행히 밑반찬이 뒤를 따른다. 열무김치.시래기무침.단호박 샐러드.무생채.묵조림.마늘쫑 볶음.숙주나물.김무침 등. 시래기무침은 질기지 않고 부드럽다. 게다가 깊은 된장 맛이 배어 젓가락 다툼이 벌어진다. 생굴이 올라간 무생채도 마찬가지다. 매콤새콤한 맛이 입을 자꾸 다시게 한다. 기장밥과 미역국이 나왔는데도 떡갈비는 냄새만 풍기며 약만 올린다.

"떡갈비는 주문을 받고 굽기 때문에 시간이 약간 걸립니다." 기장밥을 야금야금 축내기 시작할 때쯤 드디어 뜨거운 철판 위에서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떡갈비 등장. 크기가 만만치 않다. 어른 손바닥만 것이 두께도 두툼하다. 굽기 전 한 덩어리 무게가 325g이나 된단다. '어른 공경'효심의 대표적인 음식답게 잘게 다져 구웠다. 이빨에 걸리는 것 하나 없이 부드럽게 넘어간다.

노란 알이 가득 찬 간장게장 한 마리가 오르는 간장게장정식(2만원)과 한겨울에 맛보는 청국장 열무비빔밥(7000원)도 인기 메뉴다. 후식으로 직접 담근 식혜가 나오는데 밥알이 깨져 탁한 색을 내지만 맛은 가공음료보다 훨씬 달콤 상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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