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교화소에서 自我 찾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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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못된 아이에게 뜨거운 태양 아래 하루 종일 구덩이를 파라고 한다면 그 아이는 착한 아이로 변할 것이다." 텍사스주 한가운데 있는 소년 교화소인 '초록 호수 캠프'는 이런 취지로 생긴 곳이다. 이름만 초록 호수이지 반경 5백㎞ 안에 물이라고는 한방울도 없다. 옛날에는 커다란 호수가 있었다지만 다 말라버렸다. 이곳에서 절도 등을 저지른 청소년들이 깊이와 너비가 1.5m인 구덩이를 매일 하나씩 파야 한다. 착해지기 위해서.

유명 야구선수의 운동화를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이곳에 온 스탠리는 조상 대대로 자기 집안에 저주가 내려졌다고 믿는다.

증조부는 유명한 여자 갱 키신 케이트 발로에게 전재산을 털렸고,발명가인 아버지는 돈 한푼 벌어오지 못한다. 자신은 뚱뚱하다는 이유로 친구들과 선생님에게까지 '왕따' 당하는 신세다.

그러나 스탠리는 심성이 고운 소년이다. 작열하는 햇빛과 방울뱀, 물리면 그대로 죽는다는 노랑점박이 도마뱀이 괴롭히는 캠프지만 엄마를 안심시키기 위해 "수영하는 법을 배우고 수상스키를 탔다"고 거짓 편지를 보낸다. 그러나 교화소의 환경은 잔인하다. 갈고리를 휘두르며 아이들에게 상처를 입히는 원장, 서로를 보호할 줄 모르는 메마른 정서의 아이들. 스탠리는 첫번째 구덩이보다 두번째·세번째 구덩이가 점점 더 파기 힘들어진다. 그러던 중 스탠리는 문맹인 제로에게 글을 가르쳐주고 구덩이 파기 선수인 제로는 스탠리 대신 구덩이를 파준다. 어느날 교화소를 탈출한 제로를 찾아 스탠리도 탈출한다. 우여곡절 끝에 스탠리는 제로의 생명을 구하고 스탠리의 이런 희생적인 행동은 집안의 저주를 푸는 계기가 된다.

1999년 미국 출판계의 가장 권위있는 문학상 '내셔널 북 어워드'를 수상한 이 소설은 스탠리의 고조부로부터 시작된 조상들의 경험담과 스탠리가 겪는 현재를 맞물려 놓았다. 소설 끝에 가면 두 이야기는 절묘하게 만난다. 이런 복합적 이야기 구조는 소년들이 체험하는 학교·사회의 각박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도 소설의 환상적 요소를 살리고 있다는 평을 받았다. 아마존의 서평은 "소년들이 서로를 의지해 생존방법을 터득한다는 것이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을 닮았다"고 적고 있다.

이 책은 꿈이 없던 소년이 극한의 상황을 겪으며 성숙한다는 점에서 성장소설이다.

큰 덩치에도 불구하고 소극적인 스탠리는 마지막 반전 부분을 빼고는 학교와 교화소의 불합리한 처사에 대해 저항하지 못하는 순응적인 아이로 그려진다. 그런 모습이 엉뚱한 상상력을 가진 재기발랄한 다른 성장소설 주인공보다 현실의 아이들 모습에 한결 가깝다.

홍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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