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컵을 정면에 둔다? 상대방 싫다는 무언의 메시지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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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호 01면

일요일인 18일 오후 5시. 서울 중구 순화동 본사 5층 회의실에 20대 남녀 6명이 모여 3대 3 미팅을 시작했다. 여자 참석자는 건축설계사무소 직원 박혜진(25)씨, 경기도 수지에서 키즈 카페를 운영하는 오민선(27)씨, 대학 3년생인 이윤주(23)씨였다. 박씨와 오씨는 친한 선후배였고 이씨는 아는 사람이 없었다. 남자는 조현철·조영조·권영우씨 등 대학생 세 명으로, 모두 24세 동갑내기 친구들이다. 이들은 보디랭귀지(신체언어)를 알아보는 실험에 참여했다. 신체언어 전문가인 허은아(39·여· ㈜예라고 부설 한국이미지전략연구소장) 박사가 실험의 전 과정에 참여해 상황을 분석했다.

속마음 드러내는 보디랭귀지의 세계

속마음이 가장 잘 드러난 건 각자 음료수가 든 종이컵을 둔 위치였다. 신체언어 전문가들이 ‘커피잔을 이용한 방어막 형성하기’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조영조씨는 종이컵을 정면에 뒀다. 마주 앉은 오씨와의 사이에 자연스럽게 장애물을 둬 속마음을 드러냈다. 마주 앉은 박씨에게 호감이 있던 조현철씨가 종이컵을 옆쪽으로 치워둔 것과 대조적이었다. 또 여자 참석자 가운데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은 오씨는 손으로 종이컵을 쭈그러뜨린 채 탁자에 올려뒀다. 불안한 심리상태를 드러낸 것이다. 허 박사는 “상대방이 마음에 들 때는 종이컵을 옆으로 치우지만 반대의 경우 정면에 둬 장애물이 있었으면 하는 속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곧이어 남자의 소지품을 여자가 선택하는 방식으로 파트너를 정하고 일대일 대화를 하도록 했다. 남성용 향수를 선택한 대학생 이씨는 조영조씨, 메모장을 선택한 오씨는 권영우씨, PMP 충전기를 선택한 박씨는 조현철씨와 짝이 됐다. 둘 사이에 있던 책상도 치워 장애물을 없앴다. 외모에 자신감이 있다고 밝힌 조영조씨는 의자 앞쪽으로 몸을 기울인 채 이씨를 상대로 대화를 시도했다. 호감 표시였다. 반면 이씨는 단답형 대답만 이어갔다. 이씨에게 호감을 보였던 권영우씨는 오씨와 얘기할 때 등을 의자에 붙인 채 두 손을 무릎 위에 모았다. 다리를 꼬고 엉덩이를 뒤로 뺀 채 자신의 수첩을 뒤적이곤 하던 오씨는 간간이 시선을 앞쪽에서 파트너와 대화 중인 조현철씨에게 보냈다. 조현철씨의 몸은 대화 도중 박씨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발도 여자 쪽을 향했다. 손동작도 컸다. 관심이 있다는 거였다.

반면 박씨는 고개를 자주 끄덕이긴 했지만 조영조씨 쪽을 힐끗 쳐다보곤 했다. 일대일 대화 후 최종선택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조현철→박혜진, 박혜진→조영조, 조영조→이윤주, 이윤주→권영우, 권영우→이윤주, 오민선→조현철씨로 이어졌다. 권영우·이윤주씨 한 커플이 맺어졌다. 허 박사는 “상대방과의 거리 두기를 통해 친밀감의 정도를 표현하는 것 역시 몸짓언어의 하나”라고 설명했다.

방어막 치기, 적당한 거리 두기 외에도 보디랭귀지의 수단은 다양하다. 손동작·악수·발의 위치·팔짱·다리 벌림·몸의 기울임 등 몸으로 취하는 자세와 움직임, 웃음·미소·노여움 등 얼굴 표정, 음조와 음성이 전부 포함된다. 신체언어 전문가들은 사람이 의사소통을 할 때 말이 차지하는 비율이 10%라면 비언어적 신호는 90%에 이르는 것으로 본다. 예를 들어 팔짱을 끼는 건 상대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고, 양팔 붙잡기는 껴안아 달라는 자세다. 법정에서 팔짱을 끼고 있으면 대개 원고이고 양팔을 붙잡고 있으면 피고라고 한다. 비언어적 신호를 감지하고 해석하는 능력은 여성이 남성보다 뛰어나다. 상대방의 행동을 평가하는 대뇌 피질부가 여성(14~16개)이 남성(4~6개)보다 더 많아서라고 한다. 여자의 ‘육감’이 발달했다는 얘기도 여기서 출발한다. 점쟁이가 잘 알아맞히는 것도 상대방 마음을 읽어내는 ‘콜드리딩(Cold Reading)’ 기술이 뛰어나서란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 대해 80%가량 알아낼 수 있단다.

정윤경(40·여) 가톨릭대 심리학과 조교수는 “신체언어는 무의식적이고 자동으로 이뤄지는 게 특징”이라며 “한 가지 신호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고 맥락이나 상황을 종합적으로 봐야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신체언어는 사람의 의도·바람·욕망·기억·고통을 드러낸다”며 “때로는 내 제스처를 보고 내가 모르는 욕구나 희망·공포를 알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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