母性 무시하는 생리대 부가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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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 23일 종로에서 한국여성민우회는 생리대에 매기는 부가가치세의 면제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였다. 간간이 내리는 빗속에서도 여성들은 물론 많은 남성들까지 줄지어 서명했다.

우리나라의 조세제도가 형평성에서 상당히 문제가 있다고 한다. 일반 조세수입 중 간접세의 비중이 51%로 선진국(미국 21.3%, 일본 30.9%)에 비해 매우 높고, 특히 4대 보험 등 사회보장기여금과 직접세를 합한 총직접세를 국내총생산(GDP)에 대비한 총 직접세율은 11.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25.2%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저소득층에 불리한 조세구조인 것이다.

대표적인 간접세인 부가가치세는 모든 재화와 용역의 생산과 거래단계에 무차별적으로 적용되고, 최종단계에서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소비세다. 소득수준이 낮아지는 만큼 유효조세부담률은 높아지는 역진성을 띤다. 우리나라는 부가가치세로 10%를 적용하면서 역진성 보완책으로 농수축산물·무연탄 등의 기초생필품, 의료보건용역·교육영역·도서·신문·잡지·농자재·장애인 보장구 등에 영세율과 면세를 적용하고 있다.

1977년 박정희(朴正熙)정권 말기 강압적으로 실시된 이 부가가치세는 문제가 많다고 하면서도 지금껏 손도 못대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생활의 변화를 전혀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의료용역이나 교육용역이라고 다 면세해야 하는 상황도 아니고, 생활수준도 달라져 기초 생활필수품의 내용과 비중도 달라졌다. 농수축산물이 생활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현저히 낮아졌다. 연탄을 때는 서민층의 비율도 미미해졌다. 이는 부가세의 역진성을 완화하는 생필품목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함을 의미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생리대는 새롭게 세금이 면제돼야 할 생활필수품이다. 부가가치세가 제정되던 지난 70년대는 여성들이 천생리대를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일회용 생리대를 사서 쓰고 있다. 저소득층에는 여간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생리대는 비싸든 싸든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절대적인 필수품이며 값이 싸다고 해서 더 소비하지도 않는, 가격탄력성이 가장 낮은 소비재다. 해외 여러 나라들은 이미 세금을 부과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여성들의 요구에 무조건 거부반응을 보이기 보다는 현재의 부가가치세의 역진성 완화조치가 우리 생활수준의 현실을 적절히 반영하고 있는지 따져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더욱이 생리대의 부가가치세 면제는 '모성보호'라는 큰 의미가 있다. 40년 가까운 가임기간 중 여성들이 겪는 생리는 생명을 창조하고 사회를 유지시키는 모성 기능의 토대다. 사회는 여성들이 부담 없고 안전하게 생리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해줌이 마땅하다. '모성 보호'는 모든 나라가 공유하고 있는 인식이며 우리 헌법 36조도 확실하게 명시하고 있다. 지난해 모성보호관련법이 겨우 통과됐지만 생리·임신·출산에 대한 사회적 보호는 매우 취약해 급기야 출산율이 1.3명으로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들이 다른 나라처럼 출산수당·육아수당 대신 생리대를 생필품으로 인정해달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 소박한 요구다. 정부는 이른 시간 안에 부가가치세법을 개정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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