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4년 만에 월급도 올랐어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54면

"5년 만에 처음으로 이번 상반기에 흑자를 내 4년 만에 월급이 올랐어요. 이제 일할 맛이 납니다."

27일 충남 서산시 대산읍 현대석유화학단지.

석유화학 탱크의 온도·습도 등을 제어하는 수지생산1부의 운전담당 임실근(48·경력 13년)대리는 "그동안 적자 회사에 다닌다며 창피도 꽤 당했다"며 흐뭇해했다.

같은 부서에 근무하는 윤태용(35)씨도 "지난달부터는 한달에 한두번 정도 공장 부근 삼겹살집에서 회식도 할 만큼 여유가 생겼다"고 말했다.

현대석유화학은 지난 상반기 6백억원의 경상이익을 기록했다. 외환위기 이후 처음이다. 유화 경기가 좋아졌기 때문이다.

전자제품을 만드는 플라스틱 기초 원료인 스틸렌모노머(SM)가격이 t당 9백달러로 지난해보다 배이상 오른데다, 각종 비닐과 생활용 플라스틱 기초 원료인 폴리플로필렌(PP)가격도 평균 20% 정도 올랐다.

노사간의 화합과 이를 바탕으로 한 원가절감도 흑자 반전에 큰 몫을 했다.

지난해 6월 노조는 3년여간의 임금동결에 항의하며 파업 직전까지 왔었지만, 공장 가동이 중지되면 회사가 망할 수 있다고 판단해 한발 물러섰다.

한편으론 원가절감이 생활화됐다. 수지생산1부 안희곤 과장은 "마른 수건 또 짜기 식이었다"면서 "가령 올 초만 해도 탱크의 불순물을 제거하려면 하루 정도 가동을 중단해야 했지만 현장에서 한시간 만에 뜨거운 스팀으로 불순물을 녹여내는 아이디어가 제안돼 생산성이 크게 높아졌다"고 자랑했다.

폴리프로필렌을 25㎏ 부대에 담는 물류자동창고팀 김정중(35)씨도 "종전엔 부대의 양면에 모두 회사 로고를 새겼지만 지금은 앞면에만 넣는 방식으로 바꿔 원가를 절감했다"고 말했다. 공장에 들어서면 정면에 "원가절감 4백억원, 그길만이 살길이다"라는 커다란 표어도 눈에 띈다.

현대석유화학은 1백17만평 공장 부지에 연간 1백5만t의 나프타(원유에서 뽑아낸 석유화학 기초원료)분해시설을 가진, 단일 공장시설로는 국내 최대이자 아시아 두번째 규모를 자랑하는 대단위 석유화학 공장이다. 생산량중 60%를 수출하며, 중국과 동남아가 주요 시장이다. 유화공장은 현대그룹 창업주인 고(故)정주영 회장의 마지막 사업으로 그의 체취가 곳곳에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 곳이 지난 외환위기 직후 빚 때문에 무너졌다. 제2공장을 건설하면서 빌린 2조원의 빚을 견디다 못해 자율적 부채재조정업체가 되면서 채권단에 경영권이 넘어갔다.

삼성종합화학과 함께 빅딜(대규모 사업교환)대상업체로 지정되기도 했고, 외국업체로의 매각도 추진됐지만 모두 여의치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노사가 힘을 합쳐 '부실과의 전쟁'을 시작하면서 회생의 기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강헌식(53) 공장장은 "공장 관리와 근로자들의 생산성은 세계적 수준" 이라면서 "세계 5위권인 한국 유화 산업이 축소 조정되면 대만·인도 등 경쟁국가에 중국시장을 뺏길 것"이라고 말했다. 기준(奇浚)사장도 "올해 원가절감 목표는 공장 4백억원 등 모두 1천억원"이라고 밝혔다.

서산〓김태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