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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드림의 천국에서 만납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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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지난해 여름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 1톤 트럭 여덟 대가 늘어섰다. 지름 81㎝의 팀파니부터 손바닥만한 깡통까지, 100여 종류의 악기가 행차하는 ‘대이동’이었다.

‘고고싱(GO鼓Sing)’이라는 제목으로 열렸던 타악기 공연의 풍경이다. 다음달에 두 번째 공연이 열린다. 음악감독을 맡은 이강구(아카데미 타악기 앙상블) 대표는 “대규모 타악기 공연이야말로 말 그대로 애물단지”라고 설명했다.

이 고생을 사서 하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20년 구상 끝에 타악기 ‘잔치’를 연다. 이달 나흘간 열리는 제1회 서울 국제 타악기 페스티벌의 예술감독 박광서(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다. “타악기의 거대한 축제를 보여주겠다”며 한국·일본·대만의 타악 연주자 70여 명을 불러모았다. 올 여름을 ‘두드림 천국’으로 만들 두 행사의 음악감독이 말하는 타악기의 매력은 뭘까.

지난해 열렸던 타악 공연 ‘고고싱’의 한 장면. 한국·스위스·일본의 타악 앙상블이 모였다. 올해는 한국·미국의 팀이 한 무대에 선다. [뮤직필 제공]

◆21세기의 악기=독주 악기로 쓰인 타악기의 역사는 비교적 짧다. “두드림은 원초적 행위이기 때문에 타악기 자체의 역사는 길다. 하지만 19세기 이전에는 민속 악기거나 합주 악기일 뿐 독주 악기로 주목 받지 못했다.”

박 교수는 20세기 이후 현대음악에서 리듬이 중요해지고 다양한 실험이 시작되면서 타악기의 중요성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작곡가 말러는 자신의 교향곡에서 철판과 나무, 빗자루까지 동원했다. 한국 작곡가 진은숙씨는 과자봉지, 중국의 탄둔은 그릇에 물을 담아 무대 위로 올린다. 이렇듯 현대 음악의 ‘대담한’ 재료를 담당하는 이가 타악 주자들이다.

◆팔방미인을 위한 악기=타악기는 일종의 멀티미디어다. 이강구 대표는 “타악기 공연에서는 새롭게 만든 악기가 많이 쓰인다. 옛날에 한국에서 쓰던 기름통 여러 개를 서로 다른 높이로 잘라 붙인 악기는 듣는 재미뿐 아니라 보는 재미도 준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공연에서도 이처럼 새로 만들어진 ‘이름 없는 악기’ 30여 종을 소개한다. “샌드 페이퍼를 널빤지에 붙인 악기도 있다. 이 악기는 연주하는 동작까지도 공연이 된다. 이 역동성이 바로 타악 공연의 매력”이라고 했다.

세계적인 타악기 연주자들은 작곡가를 겸한다. 많은 제자를 배출한 프랑스의 에릭 사뮤, 파리 오케스트라의 수석 연주자인 프레데릭 마카레즈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제1회 서울 국제 타악기 페스티벌에 초청돼 직접 만든 작품을 들려준다. 미국의 주목받는 타악 주자 마이클 유다우는 ‘고고싱’ 공연에서 자신의 음악을 직접 개발한 악기로 연주할 예정이다.

두 행사의 음악감독은 “타악기 연주자는 연 뿐 아니라 퍼포먼스도 잘 해야 한다. 여기에 작곡·편곡 실력도 기본이다. 타악 연주자들은 진정한 팔방미인”이라고 입을 모았다.

▶제1회 서울국제타악기페스티벌=26~30일 매일 오후 5시, 8시 서울 서초동 한국예술종합학교 크누아홀. 02-3488-0678

▶‘고고싱’=8월 2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02-706-1481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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