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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에서 한식 세계화의 DNA 찾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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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최근 우리나라는 정부 차원에서도 한식 세계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반도체 산업의 약 15배에 달하는 규모의 세계 식품산업 시장이다. 뜨거운 여름 불볕더위를 한 방에 날리는 냉면의 참맛, 엄동설한의 추위 속에서 살얼음 동동 떠 있는 냉면을 먹으며 추위를 이겨온 ‘코리안 패러독스’의 독특한 냉면 문화. 구한말 나라 걱정에 잠 못 이룬 밤 불면증을 달래준 ‘배동치미 냉면’에 대한 고종의 편애. 한국인의 사랑을 한 몸에 듬뿍 받고 있는 면(麵) 요리의 대표주자인 냉면은 세계 시장을 누빌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우선, 냉면은 이미 전 세계 식탁을 점령한 보편성을 가진 면류 음식의 하나다. 면류는 면·국물·고명과 양념을 조금만 다르게 결합하면 무궁무진하게 변하는 창의성과 다양성을 가진 음식이다. 어떤 지역의 음식 문화와 만나느냐에 따라 변신할 수 있어 3000년 동안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 세계인의 인기 메뉴로 살아남았다. 나아가 우주의 식탁까지 넘보는 태생적으로 퓨전코드를 가진 기묘한 음식이라고 ‘누들 로드’ 저자는 말했다.

둘째, 한 번이라도 먹어본 경험 있는 음식에 대해서는 인지도가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세계인이 우리 음식을 쉽게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냉면은 더 이상 그림의 떡이 아니다. 누구든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게 조리해 먹을 수 있도록 산업화한 냉면이 이미 존재하기 때문이다. 냉동이나 냉장의 보관 한계를 벗어나 상온에서 보관할 수 있는 냉면 제품이 나올 만큼 우리나라의 면 제조 기술력은 날로 발전하고 있다.

셋째, 냉면은 갈비와 같은 한식 세계화의 ‘스타 선수’들과 함께 동반 성장할 수 있는 아이템이다. 간편한 봉지 냉면을 쉽게 조리해 현지 한식당에서도 갈비를 먹은 후 곁들이는 음식으로 제안하면 한국의 독특한 냉면 문화를 널리 선보일 수 있을 것이다.

냉면 봉지에 적힌 조리법을 읽어가며 아이들과 함께 냉면을 만드는 세계인의 부엌을 상상해 보자. 무더운 여름이 오면, 매서운 겨울이 되면, 갈비를 먹고 나면 우리네가 꼭 먹어야 하는 냉면처럼 그들도 모르는 사이에 한국인의 냉면 사랑에 서서히 중독되고야 말 것이다. 우리의 냉면은 그런 역량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 한식 세계화의 대표선수다.

정덕화 경상대 대학원장·전 보건복지부 식품위생심의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