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건보 자유화, 의료 질 향상 위해 바람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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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않는 병원이 생겨나는가. 최근 보건복지부가 이런 병원을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은 의료체계 다양화 측면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의무적으로 건보환자를 받아야 하는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대신, 병원의 자율성을 인정하는 '계약지정제'가 가시권에 접어든 것이다. 복지부는 아직 신중한 입장이지만 의료계는 물론 일부 의료개혁 진영까지 찬성 쪽으로 기울고 있다.

새 제도가 도입되면 병원 간에 경쟁이 촉발돼 국내 의료산업의 경쟁력과 의료 서비스 질이 높아질 것이다. 환자의 선택 폭은 넓어지고, 부담능력에 따라 '첨단 의술'이나 '맞춤형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길도 열린다.

우려되는 문제들이 없는 것도 아니다. 저소득층이 질 높은 의료 혜택에서 소외돼 계층 간 위화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의료보험 초기에 계약지정제를 일시 도입했다가 혼란이 초래된 것이나, 2년 전 헌법재판소가 요양기관 당연지정제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린 것도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

그러나 의료시장 환경은 엄청나게 변했다. 의료보험이 출발한 1977년과 달리 요즘은 문 닫는 병원도 흔하고 의료시장의 공급과잉 조짐까지 보인다. 지난해 30조원에 달한 국내 의료시장은 획일화된 잣대를 들이대기에 너무 커졌다.

삶의 질이 높아지면서 의료 수요도 다양해지고 있다. 고난도 의료기술이나 평범한 의술이 똑같은 건보수가로 대접받는 사실에 의문을 표시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지난해 해외 원정 진료로 뿌린 돈만 1조원이 넘는다고 한다.

다행히 그동안 적자 메우기에 급급했던 건강보험공단은 지난해 1조5000억원이 넘는 흑자로 돌아섰다. 이제 의료서비스도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눈을 돌릴 만한 여유가 생겼다.

앞으로 새로운 제도가 전체 건강보험 체계를 흐트러뜨리지 않는 범위에서 의료계에 경쟁을 도입하고 의료의 질을 높이는 쪽으로 흔들림 없이 추진되기를 기대한다. 실용적인 입장에서 머리를 맞대면 접점은 충분히 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