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돼지 심장이 사람 몸에서 뛸 날 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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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규리 교수(왼쪽)가 팀원들과 함께 장기이식 때 발생하는 면역거부 반응 등을 살펴보고 있다. 김춘식 기자

수많은 난치병 환자들이 뇌사자가 발생해 장기를 기증해 주길 바라다 죽어가고 있다. 기증되는 장기가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돼지나 침팬지 등 동물에서 인간의 장기를 쓸 만큼 언제라도 생산할 수 있는 세상은 난치병 환자들이 기대하는 '천국'이다. 서울대 의대 신장내과 안규리(50) 교수는 장기 기증을 애타게 기다리는 난치병 환자들의 희망을 일구고 있는 연구자다. 그는 심장.폐.췌도 수술 전문가, 인간 유전자를 집어넣은 돼지 생산 전문가 등 연구팀원 30여명을 이끌고 돼지에서 인간 장기를 생산하는 연구에 매달리고 있다.

서울 연건동 서울대학병원 임상실험연구동에서는 매주 돼지에서 떼어낸 장기를 다른 돼지나 개 등에 이식하는 수술을 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28일에는 돼지 심장을 다른 돼지에 이식하는 수술이 서울대 의대 흉부외과 이정렬 교수팀의 집도로 있었으며, 이달 들어서도 서너차례 수술 일정이 잡혀 있기도 하다.

"10~20년 사이에는 인간이 돼지의 심장.신장 등 장기를 통째로 이식받을 날이 올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게 되면 난치병 환자들이 자신들을 위해 멀쩡한 누군가가 뇌사자가 되길 바라는 비극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는 20여년 동안 신장 이식을 연구하고 있는 이식면역학 전문가. 사람 간에 장기를 주고 받을 때 면역거부 반응이 어떻게 일어나고, 어떤 처치를 해야 하는지를 밝혀내는 일을 해왔다.

지금은 돼지의 장기를 사람한테 이식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면역거부 반응을 해결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돼지의 장기를 사람한테 이식하는 데 최대의 걸림돌이 면역거부 반응과 바이러스 감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의 연구팀이 하는 일은 미래에 돼지에서 인간장기를 생산하는 일의 성폐가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이 문제만 해결하면 당장이라도 돼지의 장기를 사람한테 이식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는 게 안 교수의 설명이다.

사실 안 교수는 당초 연구는 하지 않고 환자를 돌보는 일에 매달리려고 했다. 당장 환자를 진료.치료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라는 데 실험실에 앉아 있는 것은 어쩌면 '사치'라는 생각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외국인 근로자 무료 진료소를 7년여 동안 운영해 오고 있다.

그러던 그가 이 연구에 투신하게 된 것은 이번에 교육부총리로 입각한 이기준 전 서울대 총장이 2000년 총장 재직 때 우연히 황우석 교수를 소개하면서부터다. 안 교수는 인체를, 황 교수는 동물을 다루는 전혀 다른 분야에서 연구하고 있었기 때문에 같은 대학에 있었어도 잘 알지 못했다. 그에게 가장 큰 힘은 연구팀원과 황우석 교수가 복제해 내고 있는, 사람에 맞게 유전자를 바꾼 무균 미니돼지. 미니돼지는 인간 장기를 생산하기에 가장 적합한 동물로 꼽히고 있다. 장기 크기가 사람 것과 비슷할 뿐더러 임신기간도 짧고, 한꺼번에 10여마리까지 새끼를 낳기 때문이다. 인간에 맞게 유전자를 조작하기도 비교적 쉽다. 이런 돼지는 세계에서 미국과 우리나라밖에 없는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보물'이다.

안 교수팀이 가장 먼저 치료에 적용하려고 잡고 있는 목표는 당뇨병 치료용 췌도세포 생산이다. 췌도세포를 형질전환 무균 돼지에서 대량으로 생산해 이를 사람에게 이식하자는 것이다.

난치병인 당뇨병 환자가 우리나라에만도 매년 2.5%씩 증가하고 있고, 그에 따른 합병증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돼지에서 췌도 세포를 손으로 추출하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이를 자동화해 일정한 양을, 안정적으로 추출해 영장류에 이식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과제라는 게 안 교수의 설명이다. 올해 안에 원숭이에 이 췌도세포를 이식하는 실험을 시작할 예정이다. 이 과정을 성공적으로 거치면 수년 안에 환자의 치료에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안 교수는 내다봤다.

"돼지의 장기를 사람이 이식하려면 넘어야될 산이 너무 많다. 그러나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한다."

안 교수와 그의 팀원들의 열정은 장기를 기다릴 미래의 난치병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기에 충분했다.

안 교수는 연구팀이 한 곳에 모여 연구할 수 있는 시설이 너무 아쉽다고 말한다. 바이오 분야 연구는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의사.수의사들이 힘을 합해 이룩해야 할 일이지만, 시간을 쪼개 생활하는 이들이 각각 흩어져 있어 연구 효율을 높이는 데 어려움이 크다는 것이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사진=김춘식 기자 <cyjb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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