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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102층 짓게 놔둘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차라리 관광명소라도 될 수 있는 1백2층 건물을 짓게 하고 주변 도로 확장 약속을 받아들일 걸 그랬어요."

서울 강남구 도곡·대치동 일대 아파트 주민들은 요즘 인근에 속속 들어서는 초고층 주상복합건물군(群)을 보면 가슴이 콱 막힌다.

1996년 도곡 2동에 지으려던 1백2층짜리 삼성 제2사옥은 교통난과 조망권을 이유로 주민들이 적극 나서 저지했지만 대신 초고층 주상복합건물이 무려 11개 동이나 들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대림아크로빌, 아카데미스위트, 우성캐릭터빌, 현대비전 21 등 30~40층짜리 건물이 빽빽이 들어섰고 최고 69층에 이르는 타워팰리스 7개 동이 솟아오르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 봄 평당 1천41만원의 공시지가를 기록해 전국 주거지 가운데 최고의 금싸라기 땅이었던 이 일대 주민들의 표정은 밝지 않다.

현재 이 지역 주요 도로의 출퇴근 시간 차량 평균 시속은 10~33㎞로 정체가 심한 편이다. 그러나 오는 10월부터 삼성타워팰리스 입주가 본격화되면 속도는 3~4㎞ 가량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인근 개포 택지개발지구까지 개발될 경우 '교통혼잡특별구역'으로 지정을 검토 중인 강남 코엑스 아셈빌딩이나 동대문시장 주변도로처럼 극심한 교통 체증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전국 최고의 노른자위 주거지가 최악의 교통지옥으로 변하는 셈이다.

인근 주민들은 '흉물 타워팰리스,숨막혀 못살겠다'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나섰다.

서울시는 뒤늦게 중장기 교통대책을 마련키로 했으나 시 고위 관계자는 "주변 땅값이 1천만원을 웃돌아 부지를 매입해 도로를 만들거나 확장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삼성측도 대부분 분양이 끝나 소유권이 분양권자들에게 넘어간 상태여서 대안 마련이 쉽지 않아 곤혹스런 입장이다.

원래 경찰기동대 훈련장소였던 이곳은 서울시가 지하철 건설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1994년에 상업용지로 용도를 변경한 뒤 예정가의 두배인 평당 3천만원에 삼성에 매각했다.1만5천여평을 4천4백30억원에 사들인 삼성은 1996년 1백2층짜리 제2사옥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삼성은 예상되는 교통난 해소를 위해 양재천변 도로를 왕복 4차선으로 확장하고 ▶제2사옥과 삼성동 코엑스를 연결하는 스카이카 설치▶언주로 지하차도 건설▶교통체증 지역에 오버브리지 설치▶도곡역 확장 등을 무상으로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교통난·조망권을 우려한 주변 아파트 주민들이 연일 반대시위를 벌이자 삼성은 건설교통부의 중앙교통영향평가까지 통과한 상태에서 건축을 포기했다.

하지만 주민들의 기대와 달리 상황은 악화됐다. 오는 10월 입주를 시작해 2004년에 마무리되는 타워팰리스 7개 동의 총건평은 29만5천9백1평. 처음 삼성이 계획했던 1백2층짜리 제2사옥 총건평(14만7천3백68평)의 두 배나 된다.

결국 주변 도로는 확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형 주상복합건물이 집중적으로 들어서는 바람에 이 일대는 시간이 흐를수록 심각한 교통 몸살을 앓을 전망이다.

김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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