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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화재배 바둑 점심시간 없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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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삼성화재배는 국제대회 사상 처음으로 스포츠에 걸맞지 않은 ‘경기 중의 식사’를 없앴다. 훈수도 원천 봉쇄했다. 사진은 전기 삼성화재배 예선전 광경. [한국기원 제공]

점심시간을 없앤다는 것은 ‘훈수’를 원천적으로 차단한다는 점에서 더욱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축구나 야구는 쉬는 시간에 아무리 훈수해도 선수가 제대로 하느냐는 별도의 문제다. 바둑은 다르다. 다음 수를 예상하고 스토리를 미리 그려보며 계가를 하고 승부도 예상할 수 있다. 점심시간에 서로 상의해서 전략을 준비하면 100%는 아니라도 매우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게 바둑이다.

바둑이 예(藝)나 도(道)였던 시절에 훈수는 자발적 금기사항이었다. 바둑의 명소 운당여관에서 거의 모든 도전기가 두어지던 1970년대엔 점심뿐 아니라 저녁까지 먹었다. 대국자와 관전객이 함께 둘러앉아 운당여관의 한식을 맛보며 담소를 나누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1940년대 일본에서 두어진 슈사이 명인의 은퇴바둑은 무려 6개월이 걸렸다. 늙은 슈사이는 탈진했고 병까지 얻었다. 그러나 제자들 어느 누구도 젊은 기타니 미노루에게 고전하고 있는 슈사이에게 훈수할 생각은 꿈도 꾸지 않았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저 유명한 토혈국(吐血局: 본인방 조와와 아카보 인테스 사이의 승부바둑)도 마찬가지다. 젊은 인테스는 강에 배를 띄워놓고 매일 밤 수를 고심했고 명인 자리를 지키려는 죠와는 골방에서 홀로 바둑을 연구하다 오줌을 지리는지도 몰랐다고 전해진다. 제자들이 많았으나 함께 연구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일본 3대 기전은 지금도 이틀짜리 바둑을 둔다. 봉수(첫날의 마지막 수를 판 위에 놓지 않고 종이에 적어 감추는 것) 말고는 훈수에 대해선 어떤 방비도 하지 않는다. 일본 바둑은 지금도 예도의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스포츠라면 얘기가 다르다. 바둑에서 ‘집단연구’는 엄청난 효율을 지닌 것이 이미 입증됐다. 스포츠에서 전략회의 같은 건 결코 잘못도 아니다. 삼성화재배가 점심시간을 없앤 것은 훈수의 유혹을 사전에 차단한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경기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삼성화재배는 1269명이 참가했던 온라인 예선을 끝내고 24일부터 본격적인 예선전에 돌입한다. 본선 이상의 경기에서 꿈나무를 위한 장학기금을 조성하는 이색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한국 기사가 승리할 때마다 후원사가 1집에 1만원(불계승 30만원)씩 적립하여 바둑 장학금으로 사용한다. 본선은 9월 7일 중국 쑤저우에서 열린다. 총상금은 6억6000만원.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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